병(病)직 중입니다

아픈 사람이 짊어지는 부담과 책임

by 봄밤

"나 휴직할까?"


1년 전, 저녁 먹고 설거지하려는데 몽글이 말했다. 나는 다시 식탁으로 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힘이 빠진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 그맘때쯤 몽글은 잠을 자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N번방 사건에 분노했고 연일 뉴스가 쏟아졌지만, 피해자를 지원하는 그는 정작 분노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피해자가 죽을까 봐, 자살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가해자가 죽을까 봐, 기소가 안 될까 봐, 형량이 적게 나올까 봐, 가해자가 보복할까 봐... 밤마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다가도 이내 “안 돼!”라며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기 일수였다. 손목의 자흔도 늘었다. 언론 보도 후에는 "실수로 엔번방에 들어갔는데 처벌받느냐"라고 묻는 가해자들의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야근하고 돌아온 몽글과 대화할 때마다 눈동자가 초점 없이 흔들리는 걸 보며 나도 다 그만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쉬겠다는 말은 반가웠지만, 번뜩 돈 생각부터 들었다. 몽글에게는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과 부모님의 빚이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터라 모아둔 돈도 없었다. "휴직하자. 내가 도와줄게." 당시 나도 불안정한 프리랜서였던 주제에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은 살리고 보자는 생각에 몽글이 내민 손을 잡았다. 에코백 속에 버젓이 담긴 번개탄 두 개를 발견할 때마다 자살을 준비하는 몽글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다. 그맘때쯤 몽글은 자주 웃었는데, 나는 그 웃음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죽음 말고는 자신을 구원할 게 없다고 믿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짓는 미소만큼 쓸쓸한 게 있을까.


처음에는 두 달짜리 휴직계를 냈다.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다시 두 달 연장. 그렇게 네 달만에 돌아간 일터에서 몽글은 무너졌다. "지나가다 높은 건물만 봐도 올라가서 떨어져 죽고 싶어." 업무에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과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이 겹쳐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몽글은 믿기 시작했다.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죽기로 결심하고는 "자기가 충격받으면 안 되니까 현관에 들어오지 말고 신고하라고 써 붙이고 죽으려고" 했단다. 그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몽글은 결국 1년짜리 휴직계를 다시 냈다.


휴직 초에는 해가 정오에 뜰 때까지 잠만 자던 몽글이 세 달이 지나자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베란다를 싹 청소해 자신만의 흡연실도 꾸미고, 야자수, 올리브, 아이비 등 각종 반려식물을 들였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점은행제도 신청하고, 영어 강의도 들었다. 병원도 상담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하지만 난 낙관할 수 없었다. 정해진 주기라도 있는 것처럼 한 달 뒤에는 다시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하는 기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번은 활기가 돌아와 공부 계획표를 짜는 몽글을 만류 하며 내가 말했다. "자기가 회복될 때 무리해서 다시 다운되는 게 아닐까? 걱정돼." 몽글의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이 극에 달했을 때 다시 죽을 생각을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몽글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야, 자살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거야. 완전히 무력해질 때는 그런 생각할 여력도, 실행할 힘도 없어. 그래서 에너지가 돌아왔을 때 오히려 위험하다고 그 힘을 다른 곳에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상담 선생님도 그랬어."


아, 자살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거구나. 활기찬 건 무조건 좋은 거고, 가라앉은 건 나쁜 거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걱정해야 할 타이밍조차 몰랐다. 그간 몽글이 뭐든 하다 지쳐 우울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언가 적극적으로 할 때마다 불안하기만 했다. 사회복지사 실습을 나가면 스트레스받아서 더 우울해질까 봐, 토익 시험을 보면 성적이 안 나와서 또 우울해질까 봐. 몽글 말대로 "불도 키기 전에 벌레 나올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격이었다.


"자기는 집에서 놀잖아."

한 번은 내가 몽글에게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몽글이 크게 놀라며 "내가 노는 사람이야?"라고 반문했다. 나는 몽글은 그냥 가만히 집에서 쉬고, 치료받으면서 낫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의 반문에 더 놀랐다. '낫기만 하면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몽글은 자신은 '노는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고 '낫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자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날은 아픈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다 쓴다고, “아픈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아픈 걸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는 멀뚱히 앉아 듣다가 “혼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몽글은 혼내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도 “아픈 애인을 어떻게 돌볼 생각을 했냐”라고 신기한 듯 내게 물었지만, 몽글이 어떻게 이 상황을 버티는지,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는 드물었다.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이 돌봄으로 잃는 것에 관해서는 예민한 반면, 아픈 사람이 짊어지는 부담과 책임에는 무지했다. 주변에서 아픈 애인과 사는 일을 “대단하다”라고 추켜세울 때마다 나는 무안했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은 버는 돈의 반을 몽글과 나누고, 불안할 때마다 “죽지마”라고 말하고, 공황이 와서 숨 못 쉬는 몽글을 안아주는 정도다. 일상에서 허리 아프다, 배 아프다, 글이 안 써져서 힘들다 소리를 하며 위로받는 쪽은 오히려 나다. 오죽하면 집에서 내 별명이 ‘찡찡이’일까. “아픈 사람은 아픔으로 책임을 다했다.”(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라는데, 몽글은 오늘도 글 안 써지는 나를 다독이느라 바쁘다. 휴직이란 말이 정확한 말로 바뀌면 좋겠다. 사람들이 물으면 나부터 몽글은 휴직 중이 아니라 병(病)직 중이라고 말해야겠다.


몽글이 돌보는 올리브나무, 홍콩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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