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어내기
아침에 눈을 뜨니 방 안에 어둠이 내려앉아있었다. 새벽인가, 하고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오전 여덟 시 오십육 분. 그제야 굳게 닫힌 이중창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던 빗소리를 실감한다. 초여름, 잠깐 지나가는 장대비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자 젖은 공기가 방 안으로 훅 밀려들어온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기체들이 제 몸 말릴 곳을 찾아 좁은 방에 자리를 잡는다. 자는 동안 고여 있던 방 안의 시간은 밀려온 바람에 몸을 섞으며 다시금 흘러가기 시작한다.
나는 창문을 열고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때 아닌 감상에 젖는다. 세상은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요하다. 빗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티브이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정적이 된다. 나는 이것을 비워내는 과정이라 여겼다. 도시의 소음, 사람들의 체향, 쉴 새 없이 공전하는 지구. 네모난 상자에 꽉꽉 눌러 담긴 일련의 것들을 쏟아내고 세상이 스스로 목욕을 하는 일. 비가 오는 동안 모든 것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붉은빛을 내뿜으며 천천히 바퀴를 굴린다. 거리의 행인들은 우산 아래로 얼굴을 숨긴 채 평소보다 더딘 걸음을 내딛는다. 뜨거운 태양을 잠시 밀어내고 내리는 초여름의 비란 그렇다. 세상에게 쉴 틈을 주는 것.
이런 날이면 나도 덩달아 휴식에 동참한다.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긴 감상에 젖는다.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을 천천히 비워내고, 빗물로 씻어낸다. 쓸려가는 것들은 주로 실없는 고민들이다. 이 때는 구석에 쌓여있던 사념들까지 한 번에 몰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의 의미가 사라지기에.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내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점점 아득해진다. 대신 손 끝에서 뛰는 맥박이 점점 더 선연해진다. 나는 그것을 북소리 삼아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밑바닥에 엉겨붙어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마침내 성공이다. 막상 발견하고 나면 축축한 바닥에 파묻힌 시름들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천천히 쓸어내면 되니까. 나를 마주한 감정들은 속절없이 부서져간다. 불 꺼진 집 안에서 그렇게 한참 동안 ‘마음 목욕’을 하고 나면 이윽고 나는 텅 빈 사람이 된다.
마음을 씻어내고 처음으로 보는 광경은 대개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가장 가까운 것들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당착이다. 마치 신생아가 된 양 진득하게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늘 그 자리를 지켰던 티브이가, 수납장이, 새로운 것이 된 양 눈에서 일렁인다. 깊이 심호흡을 한다. 사진을 찍어내듯 모든 것을 눈에 담는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생각에 잠겨도 좋다. 목욕 직후 떠오르는 발상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형태이므로.
어느새 비가 그친다. 가려졌던 얼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우산들이 접히고 그 위로 햇살이 몸을 펼친다. 찰박이는 빗물이 너울거리는 빛 아래에서 흐드러진다. 한참을 비워냈으니 다시 채울 시간이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켠다. 첫 번째로 채우는 씁쓸함이다. 창문 밖의 세상도 조금씩 속도를 낸다. 서늘해진 대기 위로 온갖 소란들이 덧씌워진다. 아스팔트를 지나는 자동차를 필두로, 침전되어있던 것들이 서로 공백을 메우겠다며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면 세상은 늘 그랬듯 모든 것을 오롯이 품어낸다. 만물을 차곡차곡 담아내며 숨을 죽이는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내릴 장대비를 기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