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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an 29. 2024

Seize the day

이렇게 산다. 행복하다.


나는 오늘도 7시 30분 알람에 눈을 뜬다. 이불에 삐져나온 몸의 일부는 차운 공기를 맞는다. 이불속에서 조금 밍기적거리다가, 10분이 지나기 전에는 일어난다. 다시 자 버리면 언제 눈을 뜰지 모른다. 그리고 분명 후회할 게 뻔하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이유는 하나다. 기분이 좋아서다. 머리가 아프거나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오전 시간 내내 자는 게 더 싫다. 아침 기상은 나의 하루 전체에 꽤나 영향을 끼친다.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저장해 둔 이승윤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아침 케어를 하면 힘이 난다.



방학이라 평일에는 엄마와 함께 출근한다. 아침 기운은 시리고 상쾌하다. 30분 남짓의 출근길, 센터에 도착하면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의자에 겉옷도 걸어두고 나면 엄마와 둘러앉아 출근길에 산 삼각김밥과 초코라테를 먹는다. 김밥과 초코는 참 안 어울린다. 종종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도 하지만, 웬만한 아침에는 달달한 게 먹고 싶다. 그래서 삼각김밥을 먼저 다 먹고 초코라테를 마시곤 한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에는 오늘 할 것들을 나열한다. 어젯밤에 적어 둔 게 있다면 그걸 확인하며 무얼 먼저 할지 고민한다. 아침밥은 20분 정도로 마무리한다. 아침 시간은 머리가 잘 돌아갈 때라, 핸드폰을 만지지 말고 할 것들을 최대한 빠르게 마주하는 게 좋다.


추운 겨울이라 참 밖을 나가기 싫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다. 그 이유는, 집에 머물러 있으면 계속 침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졸리면 침대를 떠올리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결국 다시 누워서 오후에 눈을 떴던 경험이 많다. 그때, 후회와 함께 밀려오는 특유의 더러운 기분이 있다. ‘일찍 깼었는데..’ 하는 찝찝한 후회 찌꺼기가 마음속을 떠다니는 그런 기분. 그래서, 아침에는 일단 밖을 나가야 한다는 게 내 철칙이다.



점심을 먹고, 배가 너무 부르거나 잠이 오면 주택가에서 산책을 한다. 다양한 주택들을 구경하면서 만약 내가 집을 지어 산다면 어떻게 지을까, 생각도 해 본다. 마구마구 상상하고 회포도 풀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남은 일을 시작한다. 사실 이때가 제일 복병이다. 배도 든든하고 아침 시간도 불태웠기에 집중이 잘 안 된다. 뭔가 늘어지고 싶다. 그래서 이때는 남은 일들 중에 가장 시작하기 쉬운 것을 해야 한다.

주택가 산책 중에 본 고양이


오후 시간에는 유튜브나 웹툰처럼, 잡다한 것들로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많았다. 터덜터덜, 집에 가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하루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에 공허함이 밀려온다. 오후의 나에게 화가 난다. 그때마다 매번 후회한다. 사실 지금도 종종 이런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무엇도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는 시간. 하지만 지금, 그때를 기록하면서 오후의 나를 돌아보고 재정비했다. 그때의 내게는 무엇이 필요했는지, 글로 써보니 생각보다 해결책은 쉽게 나왔다. 그동안 오후라는 허허벌판에서 ‘이젠 뭘 해야 하나..’라고 궁시렁거렸는데, 갈 길이 명확해진 느낌이다. 이런 게 나를 알아가는 거란 생각도 든다. 나를 알면, 내일은, 한 달은, 일 년은, 오 년은, 십 년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볼까, 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꽤나 정확하고 명확하게, 그것이 현실이 되게끔.





오후 6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더 할 때도 많지만, 내 계획은 언제나 정시 퇴근이다. 정시 퇴근이라는 건 오늘 할 일을 거의 혹은 다 끝냈다는 뜻이다. 더 남아서 해야 할 일도, 하고 싶다는 미련도 없을 만큼 열심히 불태웠다는 뜻. 매일 할 일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까, 늦게 퇴근한다는 건 그만큼 흘려보낸 시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에 오면 저녁밥을 먹고 9시에 운동을 간다. 운동은 매일, 30분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30분은 핸드폰을 보면 정말 순식간이지만, 운동을 하면 정말 알차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박자에 맞춰 숨이 찰 만큼 뛰고, 땀을 흘린다.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인데 정말 만족스럽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만족스러운 기분이 드는 활동은 아직까진 운동 같다. 집에 가는 길에는 ‘역시 나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니까.


점심, 저녁을 먹을 때는 영단어를 외운다. 자투리 시간에 가장 하기 좋은 건 영단어와 독서다. 영단어는 많이 읽고 발음으로 연상되는 것과 연결시키며 외운다. 유치하지만 정말 기억에 잘 남는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참 단순한 것 같다. 직관적인 게 뇌리에 더 잘 박히곤 하니까. 그런데 내 일상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찍 일어나는 이유, 아침에 꼭 집 밖으로 나가는 이유, 정시 퇴근을 추구하는 이유,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는 이유는 모두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기분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씻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무언갈 도전하거나 시작하거나, 행동하는 이유는 사실 별 거 아닌 이유 같다고. 복잡하고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기분이 좋으니까. 만족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드니까.’라는 이유가 나를 더욱 행동하게 만드는지 모른다고.


운동을 갔다 오면 10시쯤 된다. 씻고 나서는 다소 편한 것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못다 한 공부를 마무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지금처럼 글을 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 통계 —시간 통계는 나중에 한 번 더 소개하려 한다. 나를 바꾼 대상이기도 하다.— 를 작성하며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것이 방학을 보내고 있는 요즘 나의 삶이다. 나는 이 일상이 아주 마음에 들고 만족스럽다. 지난 2년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한 감정이 치밀어서 공부에 집중을 못했던 것 같다. 내 방법이 과연 맞는 건지, 하면서도 계속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노력에 대한 확신은 누구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만 수십, 어쩌면 수백 시간일 거라고 장담한다.


이런 내게 변화를 일으킨 것이 바로 시간 통계다. 내가 쓸 수 있는 시간, 쓴 시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시간 통계의 핵심은 요즘의 나를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특 영어 한 지문을 분석하고 푸는 데에 얼마의 시간을 쓰는지 같은, 요즘의 나에 대한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면 미래의 계획이 더욱 현실적이고 상세해진다. 그 미래라는 건, 내일, 한 달, 일 년 등을 말한다. 남은 생이 있는 한, 하고 싶은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도 있다. 그러면 시간을 어떻게 얼마나 쓸지 계획하는 건 유의미하다. 그리고 내가 하루동안 최대한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을 알게 되면 짧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흐르는 시간을 의식하며 산다는 게 적절한 표현 같다. 아무튼, 벌써 12시 30분이다. 빨리 자야겠다. 아, 최근에 알게 된 숙어가 있다. 이 숙어로 글을 마쳐야겠다.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라

다르게 말하면 오늘을 즐겨라 혹은 살아라.


나는 오늘을 잡은 채로 살았다. 잡았다는 뜻은 내가 오늘 어디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썼는지 기억난다는 거다. 하루의 끝에 시간 통계를 내고 정리된 보고서를 보면서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내일도 이렇게 살고 싶다.’ 생각하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은 내일이 기대가 된다. Seize the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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