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익숙한 일상

변해도 되는 것들을 내려놓는 법 배우기

by Bomeelove


장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것 중 하나가 아이의 환경이었다.
여행지마다 길게는 두세 달, 짧게는 주 단위로 잠자리도 바뀌고, 주변 환경이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아이에게 변화를 주어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핵심 요소가 무엇일까…



봄이는 아기때부터 여행을 꽤 자주했던 편이라 잠자리 환경이 바뀌는 것에는 크게 민감하지 않았다.

다만, 잠자리 루틴, 안정감을 주는 애착 아이템들, 그리고 잠들 때 함께 있어줄 엄마나 아빠는 필수적이었고, 이 부분은 모두 지켜질 것이므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음 고려 사항은 여행 중 아이의 안전과 우리 모두의 숙면.
딱히 양육 철학이란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가 합의한 양육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최대한 쿨하고 무던하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숙소의 조건은 그냥 안전과 편안함 두 가지만 충족하면 되었지만, 어떻게 자든 360도 회전을 하며 자는 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면서, 최소한 서로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 구조가 필요했다.


한 달보다 짧게 머무는 곳은 대부분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였고, 모두 아기 크립 제공 여부를 사전에 확인했다. 서구권 숙박시설의 크립은 대략 신장 110cm 안팎까지 사용 가능했고, 봄이는 아직 그보다 작았다.

좀 더 오래 머무는 대만, 호주, 그리고 한국에는 공기 주입식 이동 침대를 가져가기로 했다.

가격 대비 설치·해체가 간편하고, 호스트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면서도 봄이가 안전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음 고민은 장기 체류지에서 봄이의 하루를 어떻게 채워줄지였다.

잠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지 고민했지만, 2개월이 넘지 않는 체류라면 최대한 놀게 하기로 했다.
아직은 교실 속 수업보다 놀이 속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일정이 허락하는 한, 여행지의 어린이 도서관과 놀이시설을 많이 경험하게 하기로 했다.
짐을 쌀 때도 애착 책 두 권만 챙기고, 장난감은 봄이가 직접 골라 넣은 몇 가지만 들고 갔다.


마지막으로 봄이의 식단을 잠시 고민했다. 이유식도 안하고 그냥 어른식중 씹기 쉬운 음식들을 싱겁게 먹이며 키웠던지라 특별히 제한을 둘 생각은 없었다. 집 밖 음식을 많이 먹게 되겠지만, 봄이 식성에 맞추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봄이는 장소가 어디든 잘 적응했고, 잘 먹었고, 여행 전보다 디저트나 캔디류를 좀 더 자주 먹게 되었지만 기존에 잡힌 식습관을 망치지는 않았다. 자신의 잠자리 루틴도 스스로 지켰다. 어디서든 3권의 각각 다른 언어로된 책을 읽고 잠이 들었다.


호주와 대만에서는 여행지 근처 도서관의 어린이 프로그램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참여를 했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좋은 도서관이 보이면 그곳에서도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간헐적인 현장 체험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종종 부끄럼을 타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든 지도하시는 선생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잘 따랐다. 어디서든 아이혼자 참여할 수 있을만큼 봄이가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부분도 큰 도움이 되었다.


대만에서는 의도치않게 유치원을 1달 반 정도 다녔는데, 처음 몇일은 좀 울먹이긴 했지만, 일단 학교에 들어서면 너무도 씩씩하게 잘 놀았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했으며, 세개 언어를 다 골고루 구사했음에도 이상하게 노래만큼은 늘 한국어나 영어로만 했었는데, 만다린 노래들을 신나게 불러서 우리를 놀라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하는 몇달사이 엄청난 성장을 했다.

여행시 간헐적으로 사용하던 기저귀도 더는 필요하지 않았고, 아기변기가 아니어도 어른의 도움없이 자발적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여전히 집에서는 특정 야채만 먹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 마법을 걸어준 모든 야채는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종종 집에 두고온 장난감이나 책들을 그리워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들 없이도 지금 주변에 있는 것들로 즐길수 있음도 터득해 나갔다.


아이는 최소한만 필요하단걸 알고 있지만, 늘 노파심때문에 과하게 챙기고 제공하게되는 많은 것들을 여행하면서 조금씩 덜어낼 수 있었다. 아직도 여행가방, 외출가방을 쌀때마다 (결국엔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가득 채우긴 하지만, 그래도 늘 한번씩 더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아직 진행형이고 그 길에서 아이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짐은 줄이되, 마음을 가득 채우고...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최대한 아이를 보면서 시간을 즐기리라... 아이가 자라기에 필요한 건,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사랑, 그리고 작은 루틴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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