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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건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 - 한강

by 보멍

그런 순간이 있다. 가슴속에 분명하게 솟아오르는 것을 너에게 전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닿지 못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그런 나를 위해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나도 그럴 때가 있다고 맞장구치며 우리의 간격을 가리려는 너를 보며 나는 더 깊이 좌절하게 된다. 그렇게 드러난 너와 나 사이의 간격을 견디기 위해 '사람은 원래 다 다르지', '남을 어떻게 100% 이해하겠어.'라는 말로 따뜻하게 감싸지만, 거기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차갑게도 진실이다. 내 안에 솟아나는 이 느낌을 너에게도 온전히 전하고 싶어서, 더 많이 읽고 쓰다 보면 더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책을 집고, 글을 쓰게 한다.


작년 이맘때 카프카의 책에 빠졌었다. 그때 내 고민의 중심은 '왜 인간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인가?'였다. 쉬는 시간에도 뚱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나를 툭툭 치며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 물었다. 내 고민에만 빠져있던 나는 이 아이가 고작 11살에 불과한 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아이에게 '왜 우리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일까?'라는 질문을 여과 없이 던졌다. 무겁기 그지없는 질문을 들은 아이는 명쾌하게 답했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하잖아요. 그니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죠."


의심할 여지없는 명쾌한 답변이다. 그래 우리는 죄를 짓고 사는 거다. 그러니 다른 생명을 죽여서 얻은 오늘 하루를 낭비하지 말고 살아가기로, 그렇게 다짐할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이 인상 깊게 남아 며칠 후 다른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건 너무 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요?"


그 순간 선생님과 나 사이에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자리한 느낌이었다. 언어의 의미라는 걸 블랙홀이 몽땅 빨아들여서 서로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그런 느낌. 어떤 노력으로도 그와 이어질 수 없겠다는 절대적인 단절. 이어질 수 없다면 함께 있어도 혼자인 상태와 같다. 처절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KakaoTalk_20241121_143448415_01.jpg 우리는 어느 정도에 서 있어야 할까

이 책은 이해받지 못하는 것들의 이야기다. 채식을 고집하는 것, 처제와의 성행위를 영상으로 담으려는 것, 나무로써 살아가려는 것, 모두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정신병자들로 여겨진다. 언니인 인혜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평범으로부터 그들을 분리하는 데 급급하다. 책을 읽는 나조차도 이해보다는 역겨움이 앞선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그들에게는 조금 미친 것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어쩌면 인혜의 말처럼 미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건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끝까지 이해해 보려는 인혜의 노력은 눈물겹다. 인혜 또한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솟아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혜는 영혜와 남편과는 다르게 현실을 움켜쥔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 아니, 놓지 못한다. 그녀의 삶을 향한 책임감이 놓고 싶어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민이 된다. 자기 속에 솟아나는 것을 살아내며 이해받지 못하는 그들과, 이해받고 살지만 자기를 살아내지 못하는 인혜, 누가 더 불행한 삶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두 인물상을 통해 우리 삶의 윤곽이 드러난다. 우리 또한 '개성'과 '이해받음' 두 가지 양극단을 오가며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극단적으로 치우친 선택은 일상을 파괴한다. 나는 어느 곳에 경계를 짓고 머물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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