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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진에 대하여

무진기행 - 김승옥

by 보멍
내가 나이가 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 무진기행, 14p


나는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꼴로 가라앉게 되는 시기가 있다. 침전의 시기에는 모든 것이 하기 싫고, 자도 자도 피곤하고, 사람과의 대화를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그럴 때면 바깥출입을 삼가고, 배가 부르든 말든 손에 집히는 대로 먹으면서 아무런 생각이 필요 없는 유튜브나 게임에 몰두하다가 그럼에도 힘이 들 땐 눈을 감아버린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쓰레기처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득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를 믿고, 지지해 주고, 사랑해 줬던 모든 이들에 대한 죄책감. 그들이 보내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 그것들이 다시 나를 현실의 물가로 끌어올린다. 삶에 다시금 맞설 용기나 비상한 계획이 아니라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버텨내는 나를 보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반복되는 가라앉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왜 가라앉고야 마는가. 이건 일종의 도망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품고 살다가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나의 게으름과 욕심을 도무지 이겨낼 자신이 없을 때, 그래서 누구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내가 그려질 때, 멈추지 않고 잔인하게 흘러가는 지금에서 도망치는 것이다. 하루, 이틀, 무의미한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상적인 '나'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그럼 나는 더욱 깊이 가라앉는다. 가끔 정신을 차릴 때면 눈앞에 일시 정지 버튼을 상상한다. 온전하게 지금을 살아갈 자신은 없고, 아까운 삶이 그대로 흘러가 버리는 건 싫으니 차라리 이 시간을 멈춰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곧 열두 시를 알리는 전자음이 나를 때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갈팡질팡하다 영혼 없이 잠든다.


차라리 삶의 진실에 눈 뜨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퇴근하고 잘 때까지 게임만 한다는 누구도, 고민 없이 남들처럼 흘러가듯 사는 누구도 괴로움 한 점 내비치지 않는데, 왜 나는 날마다 내 그릇을 재며 초라함에 아픔을 느껴야 하는가. 삶은 흘리지 않는 것, 흘리지 않음으로써 나아지는 것, 나아짐으로써 의미를 피워내는 것, 피워낸 의미로서 아름다워지는 것,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기엔 내 모양은 영 아름답지 못하다. 아니, 아름다워질 자신이 없다.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끝까지 몰랐으면 더 나았을까? 그럴 때면 내 고향 제주도를 떠올린다. 삼매봉 도서관 3층의 구석 진 자리, 남주중학교 농구코트, 진목재 열람실, 밤바다의 외돌개, 수일통닭, 오현고 앞 씨유, 내 모든 도망의 흔적들. 내가 도망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그 시절이 근거도 없이 그립다. 도망으로 얼룩진 그곳이라면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도망치고 있는 내가 덜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3.JPG 이쪽으로 도망쳐!, 나의 무진 제주.






"서울에서의 생활이 반드시 좋지도 않더군요. 책임, 책임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긴 책임도 무책임도 없는 곳인걸요." - 무진기행, 40p
나는 이 모든 것이 장난처럼 생각되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것,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사무소에 출근했다가 퇴근한다는 이 모든 것이 실없는 장난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려서 낑낑댄다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 무진기행, 22p


책임이라는 단어의 묵직함을 알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내가 짊어진 여러 가지 책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은 단연코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이다. 20년 만에 뒤늦게 만난 어머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는 어머니의 죄책감을 줄여드리기 위해 '20살까지의 괴로움은 부모님 탓이지만 그 이후의 괴로움은 제 탓인 거예요.'이라 답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느냐 아니었느냐를 떠나서, 돌고 돌아 지금의 나를 아프게 한다. 앞으로 내 삶의 모든 결과는 내 탓이라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나의 50대도 내 탓이고, 여전한 모습으로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이상만 지껄이는 50대도 내 탓이라는 게 너무 무겁다. 이 무거움은 서울이 만든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것을 느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제주도 시절의 친구들을 우연찮은 기회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20대의 그때처럼 술이나 여자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들을 보며 나는 퍽 놀랐다. 한편으로 조금 우스웠다. 그들이 말하는 생활, 20대에서 30대로 겉표지만 갈아 끼운 듯한 사소한 생활사에 몰두하는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장난에 핏대를 높이는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그야말로 책임이 없기에 무책임도 없는 곳. 내 삶 하나 똑바로 책임지지 못하는 나약한 나지만, 그래도 책임이 영 없어서는 못 쓰겠구나 하며 오만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제 눈앞도 보지 못하고 멍하게 있는 바보들과 깔린 돌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벌레 한 마리. 그래도 바보보다는 벌레가 낫지 않나 싶다. 제주에 너무 물들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000034.JPG 힘들어도 꼿꼿하게


쓰고 나서 다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 무진기행, 62p


가라앉아 있기를 일주일, 하루 수업을 대부분 땡 처먹고 내 옆에서 조잘거리는 아이들을 끝내 무시한 채로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누가 나를 건드는 느낌에 잠결에 바라보니 누군가 내 머리에 베개를 받쳐주고, 어깨에 겉옷을 걸쳐주고 있다.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견디지 못하고 금세 정신을 놓아버렸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까스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멍하니 가라앉았던 한 주를 돌아본다. 내 사람들. 얼마나 기가 빨렸을까. 수업은 또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나를 참아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살아선 안 되지, 쓰레기장이 된 집을 조금씩 치운다. 그들의 마음을 헛되이 만들면 안 되지, 다시 제대로 살아봐야지, 식사를 절제하고 다시 마음을 바라보며 글을 쓴다.



다시 출근하는 길, 유퀴즈에 나온 이동진 평론가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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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어차피 인생 전체는 목적을 가지고 전력투구해도 안 된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됐구요. 인간이 그나마 노력을 기울여서 할 수 있는 건 오늘 하루 성실한 거. 그거는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 나머지는 제가 알 수 없죠.'


내 가라앉음은 인생 전체를 내 손에 두고자 했던 욕심 때문이었구나. 불가능한 일을 바라니 조급하고, 불안해져서 아플 수밖에 없었구나. 책임을 무겁게 느끼도록 한 것은 나였고, 아픔 또한 내가 만든 것이었다. 이상적인 '나'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늘 나는 무엇을 할지에 집중한다. 다시 삶이 살만하게 느껴진다. 아마 나는 또다시 몇 번의 가라앉음과 끌어올림을 반복하게 되겠지. 그래도 앞으로 내 무진으로의 일탈이 점점 짧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의 부끄러움을 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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