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한다. 우리 집 중년 남자 역시 TV 리모컨을 쥐면 마이크 버튼을 누르고 어김없이 외친다.
“나는 자연인이다!”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은 낮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여러 채널에서 방영하고 있다. 남편은 검색된 채널 중 적당한 곳을 선택해 시청한다. 본방송, 재방송 따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그 프로가 왜 그렇게 좋냐고 물으니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모습, 자유로움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외딴곳에서 홀로 지내는 것은 싫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골 마을 책방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나 홀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고 타당한 결론을 내렸다.
서울의 경계, 전화번호의 지역번호도 ‘02’를 사용하는 경기도 K시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빽빽한 콘크리트 아파트 숲을 벗어나 나무와 들판이 숨 쉬는 자연의 숲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아직은 출퇴근이 가능한 곳, 그러니까 경기도의 어딘가여야 했다. 틈만 나면 지도를 보았다. 컴퓨터 화면 속 지도를 확대해 가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그 어딘가를 찾던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 나는 뺑 둘러 산이 보이는 곳이면 좋겠는데.”
“집터라면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최고지.”
남편은 산은 물론 바다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고 했다. 산에서 약초를 뜯고 바다에서 낚시를 해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너무 즐겨본 탓인 듯하다. 아마도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남 얘기하듯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나의 마음은 배산임수를 찾아 달려가고 있었다. 지도의 지형을 살피며 연두색의 산과 파란색의 강이나 저수지가 있는 곳을 찾았다. 왠지 북한강이나 남한강 쪽은 정답을 찾는 귀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에서 적당한 곳을 검색하여 주말이면 남편에게 드라이브 가자고 재촉했다. 컴퍼스를 서울 중심에 찍고 포물선을 그리듯 경기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안성의 미리내 성지나 저수지가 있는 마을을 찾아, 또 어느 날은 북한산 아래 계곡 주변으로, 그리고 화성의 바닷가 근처 마을로 향했다. 찾아간 낯선 마을의 보호수 아래 앉아서, 때론 버스정류장 옆 작은 식당에서 국수를 먹으며 그곳의 일원이 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남편은 주말 나들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무심히 내비게이션을 켜고 향했다.
그러다가 단순한 주말 나들이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 느꼈는지 어느 날, 그는 강화도나 김포로 가자고 제안했다. 강화도라면 배산임수의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강화도는 섬 가운데 크고 작은 산들이 이어지고, 그 아래 논밭이 흘러 바다와 마주하는 곳, 그야말로 산을 등에 지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출퇴근 거리의 부담감으로 강화도와 가까운 김포를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김포의 끝자락은 강화도를 가르는 해협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오래된 산성의 유적지가 남아있는 문수산이 있다. 산 아랫마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은 군사 보호구역으로 통제되는 곳도 있었다. 더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하루는 문수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오르자 강화도와 섬을 휘돌아 서해로 흐르는 염하강이 한눈에 보였다. 정상에 오르니 강화도뿐만 아니라 강 건너 무채색 북한 땅도 닿아 있었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이글거리던 해가 서쪽 산등성이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은은한 석양빛과 함께 산 아래 마을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문수산 주변에서 새로운 터전이 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삭이 알알이 여물기 시작한 초가을, 부동산에서 알려준 주소를 찾아 푸른 들판을 지나 작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 조그만 공터에 도착했다. 건너편 앞마당에서 햇빛을 받고 계신 노부부에게 남편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할머니가 낯선 외지인의 넉살 좋은 인사에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요 아래 땅 좀 보러 왔어요. 저 땅 주인도 이 마을 분이신가요?”
“땅 보게? 요 위에 좋은 땅 있어. 따라와.”
대뜸 할머니께서 굽은 허리를 이끌고 집 뒤 언덕으로 향하셨다. 우리도 얼떨결에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평평하고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작은 동산을 등지고 돌아서자 염하강과 그 너머 강화의 산등성이들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동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서 와’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마을 입구의 집을 가리키며 마을 이장한테 가면 땅 주인 연락처 알 수 있다고 알려주시고는 굽은 등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무심히 언덕을 내려가셨다.
우리는 드디어 배산임수를 찾았다.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만난 이 땅은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