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 아니고 책방입니다.

by 작은 의미

‘나도 땅 가진 여자야.’


땅은 내 명의로, 건축은 남편 명의로 하기로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등기부등본을 받고 보니 300평 남짓한 땅이 온 지구 같았다. 언덕 위 반듯하게 정돈된 이 땅에 어떤 집을 지으면 좋을까, SNS, 잡지, TV 프로그램 가리지 않고 건축 관련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았다. 특히 TV 프로그램 중 「건축 탐구 집」을 보면 집에는 건축주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집의 모습이 부럽기도, 희망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집과 책방을 분리하여 ㄱ자로 배치하자. 책방은 박공지붕에 층고를 높게 하고, 정면은 전체 통창, 서쪽은 벽면 가득한 책장 사이로 석양을 볼 수 있는 통창으로 하자. 다락방에 북스테이 공간을 만들자. 다락방이지만 답답하지 않아야 한다. 가능하면 작은 공간이라도 분리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는 책방 마당 한쪽에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 캠핑카를 두자….’

어릴 적 마당에 나무 막대를 들고 집을 그렸던 것처럼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여전히 작은 내 손에서 연필이 춤을 추었고, 그에 맞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설픈 내 그림을 보고 남편이 흰 도화지에 다시 그렸다. 삐뚤빼뚤 낙서 같던 그림이 동화 속 한 장면이 되어 나타났다. 건축사를 만나 또박또박 짚어 가며 설명했다.


“이곳은 책방이에요. 다락방에는 북스테이 공간을 만들 거예요.”

“네, 아주 좋네요. 자~알 알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된다는 R 건축사무소 대표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건축 초보인 우리 부부는 안심했다. 그런데 한 달여 후 받아 본 설계 도면에는 책방이 공부방이라고 되어 있었다. 도면을 검토하고 조정하면서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요. 공부방이 아니고 책방이에요.”

“아, 네! 알고 있습니다.”




도면에 책방이면 어떻고 공부방이면 어떻겠는가. 어차피 우리가 쓸 공간인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싹이 트고 있었다. 건축 과정에서 우려된다는 모든 일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결국 자신감 넘치던 R 건축사무소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중도 포기했고, 우리가 시공사와 직접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용승인과 등기 마무리는 R 건축사무소가 의뢰한 T 건축사무소에서 진행해 주기로 했다. 건축만큼이나 사용승인을 받는 일도 험난했다. R 건축사무소에서 누락한 서류들을 직접 챙겨야 했다. 남편이 사정하고 윽박지르면서 빠진 서류를 하나하나 받아냈다. 서류가 마무리되어 사용승인 접수를 한다던 T 건축사무소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기 ‘나’ 동의 근생건물 용도가 학원으로 되어 있는데요? 서점 같은 소매업을 위해서는 건축 용도변경이 필요해요.”


건축 신고 시 책방이, 그러니까 서점이 아닌 학원으로 신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 공부방. R 건축사무소에서는 공부방을 학원이라고 생각하고 건축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우리 잘못인가? 근린생활시설이 무엇인지, 그 범주에 1종, 2종이 어떻게 나뉘는지도 몰랐다. 서점이라고 콕 짚어 말해줬어야 했다. 이곳을 책도 팔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서점과 카페라고 콕콕 짚어 말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건축 신고에 업종까지 들어가는 것이었다면 더 확실하게 물어보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명치끝에서 머리로 우지끈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건축용도 변경으로 안 그래도 더딘 사용승인이 한여름 늘어진 엿가락처럼 길어졌다.



북스테이도 문제였다. 건축하는 동안 주말이면 현장에 들렀다가 강화 나들이를 다니곤 했다. 하루는 강화에 있는 S 책방에 갔다. 북스테이까지 운영하는 책방지기는 우리가 책방과 북스테이를 위해 집을 짓고 있다고 하자 조언을 해주었다. 일반 가정집과 민박의 정화조 크기가 다르니, 그에 맞는 것이 설치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정화조를 묻기 전이었다. R 건축사무소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정화조 크기를 고려했는지 물어봤다.


“네? 민박이라고요?”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되물었다.

“북스테이라고 했잖아요.”


다행히 정화조 공사 시작 전이니, 규격에 맞는 것으로 묻겠다고 했다. 북스테이는 책이 있는 민박 형태라고 설명했어야 했다. 아니, 생소하면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알고 있는 듯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북스테이가 익숙한 숙박 형태는 아닌 듯하다. 북스테이를 하면 책을 읽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인지, 책만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 사람이 있다. 책을 안 읽어서 못 오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예 북스테이가 뭐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남편은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펜션이라고 소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펜션이 아니라고 소리 높여 강조했다. 펜션은 여러 명이 함께 와서 고기도 구워 먹고, 놀며 쉬는 공간이다. 그러나 먹고 놀고 쉬는 공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쉼을 통한 비움과 책을 통한 채움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꽂혀진 책 제목만 보아도, 우연히 마주한 한 문장으로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오롯이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외친다. 펜션 아니고 북스테이입니다.



#봄길책방북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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