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부는 베짱이

by 작은 의미

남편은 악보를 못 읽는다. 음표를 모른다는 건지, 계이름을 모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본인이 악보를 못 본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노래는 잘 부른다. 리듬감이나 박자감이 좋다. 청음도 좋다.




그는 몇 년 전 가요 프로그램에서 다이아토닉 하모니카의 재즈 연주를 본 후로 푹 빠졌다. 몇 날 며칠 유튜브를 돌려 보더니 하모니카를 구입해서 혼자 유튜브 선생님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일반 하모니카보다 작은 다이아토닉은 소리의 꺾임(밴딩)이 용이해서 주로 재즈나 가요를 연주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남편은 매일 같이 연습을 하더니, 곧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유튜브를 따라 하모니카를 불던 그가 진짜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 마을 교회 목사님이시다. 작곡을 전공한 그는 악기도 잘 다룬다. 관악기 밴드 활동도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남편과 목사님은 단짝이다.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둘이 만나면 모든 것이 OK~ 힘든 일도 즐겁게 한다. 취향도 비슷하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먹는 것, 넉넉한 체형까지도 닮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가끔 둘을 헷갈려한다. 그럴 때면 어릴 적 헤어졌던 형제라며 개구쟁이처럼 장난친다. 둘은 책방에서 때때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했다. 책방에 오는 손님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를 하고 때론 신청곡을 받아 연주해 주기도 했다.




하루는 Y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요양원에 계신 엄마한테 갔다가 울적한 마음으로 책방에 갔어. 책방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야. 무슨 날인가 싶어 문을 여니까 두 남자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거야. 그 앞에 사람들은 턱을 괴고 감상하고 있더라. 아주 베짱이가 따로 없더라.”

따사로운 오후, 마을 사람들과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개미처럼 일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괜스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해 헛웃음이 나왔다.




턱을 괴고 감상하던 이웃 마을 주민 몇 명이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목사님은 기꺼이 선생님이 되어 주셨다. 월곶문화센터 동아리실을 빌려서 무료로 가르쳐주셨다. 책방에서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하던 목사님과 남편은 마을 회의에서도 종종 연주를 하다가 드디어 ‘월곶면민의 날’ 정식 공연을 하게 되었다. 하모니카 수강생 중 수제자 S 씨까지 합류하기로 했다. 세 명은 자신들을 소개하기 위해 ‘하모니카 봄길’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공연을 위해 부지런히 만나서 연습을 했다. 목사님은 적당한 곡을 골라 편곡을 하고 합주를 이끄셨다. 그러나 악보를 읽지 못하는 남편은 본인의 감각으로 자유롭게 화음을 넣어가며 분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악보대로 불라고 하고, 남편은 느낌대로 화음을 넣겠다며 티격태격하는데, 그 모습이 톰과 제리가 따로 없다.



하루는 퇴근 후 돌아와 책방 문을 여니 목사님과 남편, 그리고 바이올린과 플루트를 연주하는 젊은 남녀가 함께 연주를 하고 있었다. 북스테이로 온 부부였다. 남편은 바이올린, 아내는 플루트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데, 마음껏 연습하고 싶어서 시골 책방을 찾아왔다고 한다. 북스테이로 온 손님인데, 조용히 둘만의 연습 시간을 갖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갑작스레 낯선 이들과 연주를 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아닐지 염려가 되었다. 목사님의 리드로 기타와 플루트, 하모니카와 바이올린, 또 모두 함께 연주했다. 젊은 부부도 수줍게 웃으며 만족해했다. 얼마 후 예정인 플리마켓 때 협연을 하자며 남편이 제안했다. 불편한 제안이면 어쩌나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그러겠노라고 했다.




남편은 시골 책방에서 하모니카 부는 베짱이로 살아간다. 매일 직장으로 출근하며 개미처럼 일하는 나는 어느 땐 베짱이 남편에게 심통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시골 책방주인이 되어 달라고 한 건 나였다. 혼자만 팔자 좋게 즐기며 산다고 이따금씩 투덜거려도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시골 마을에 스며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모두가 개미처럼 살 필요는 없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삶을 그가 채워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