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 울려 퍼진 하모니

봄길 플리마켓

by 작은 의미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아~ 아~ 안내해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 마을에 있는 봄길책방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는 날입니다. 봄길책방에서 12시부터 마을 노인들께 음식을 대접한다고 하오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구름도 파란 하늘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다행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촉촉이 젖은 마당으로 나갔다. 제4회 봄길 플리마켓이 열리는 날이다.

흥겨운 노래가 끝나고 마을회관에서 마이크를 든 노인회장님의 목소리가 온 마을을 깨운다.




책방을 시작하고 해마다 가을이면 일일 플리마켓을 열었다. 월곶 문화센터에서 열렸던 플리마켓에 판매자로 참석한 후 우리 책방에서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을의 축제로 만들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책방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첫해는 손재주 많은 지인에게 SOS를 쳤다.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운 J, 핸드메이드 인형 자격증을 딴 Y에게 재미있는 일을 벌여 보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취미로 해 왔던 본인들의 물건이 팔릴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호기심과 재미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S와 H는 옷을 판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책방을 시작하고 알게 된 뜨개 솜씨가 좋은 늘보, 도예가 아립과 목공이 취미인 우즈우드 부부, 은공예 샵을 운영하는 인근 수공예작가도 참여하기로 했다. 잔치에 음식이 없으면 팥소 없는 찐빵, 마을 부녀회에서는 즉석 분식코너를 운영하기로 했다. 두 번째 해부터는 판매자를 공개모집 했다. 새로운 판매자들이 신청하기 시작했다. 매년 작은 음악회나 북토크로 마무리하면서 우리 마을의 문화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단 하루로 끝나는 행사지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판매자로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고, 음악회나 북토크를 위해 연주가나 작가를 섭외해야 한다. 그리고 예정된 날이 다가오면 매일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마음 졸인다.




올해도 열 명의 판매자와 마을 이장님과 부녀회 도움으로 분식코너까지 마련되었다. 남편은 미리 커다란 플래카드와 마당을 가로질러 가랜드를 걸어 놓았다. 마을회관에서 가져온 천막을 치고 테이블과 취사도구를 설치해 두었다. 그럴싸한 잔칫집이 되었다. 이른 아침, 제일 먼저 올라오신 분은 이장님과 명숙아주머니다. 전날 준비한 음식 재료를 정리해 놓고 방앗간에 가래떡을 찾으러 간다며 부리나케 내려가셨다.


오늘 판매할 음식은 김치전과 채소전, 떡볶이와 어묵, 그리고 김밥과 라면, 가래떡이다. 메뉴와 가격표가 천막 아래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모든 재료는 국산(포내리)’이라고 적힌 종이가 살랑살랑 나부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판매자들이 하나둘 도착하면서 더 분주해졌다. 테이블을 가져오지 못한 판매자가 있는지, 부스 설치에 어려움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전기선을 찾거나 의자와 소소한 도구를 찾는 사람도 있다. 판매 부스 세팅을 살피며 분주히 오가는데, 남편은 작은 무대를 만드는 데 정신을 쏟고 있다. 의자와 보면대를 가져다 놓고 마이크와 앰프 설치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음악회는 5시이고, 사람들이 다닐 공간도 부족한데 말이다. 이렇게 무대에 정성을 쏟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지인 찬스로 실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지원 사업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악이 있는 북토크, 오카리나 연주자의 재능기부로 진행했던 작은 음악회를 올해는 마을 하모니카 동아리 멤버들이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 동아리에 남편이 속해 있는 것이다. 무대 준비에 유독 신경 쓰는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음악회에는 얼마 전 바이올린과 플루트 연습을 위해 북스테이를 왔다던 젊은 부부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 부부는 클라리넷을 하는 선배까지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낮 12시,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마을 어른들도 올라오셔서 분식코너에서 준비해 준 음식을 드셨다. 해마다 마을 어른들께 식사를 대접했다. 남편은 식사하시는 어른들을 살피는 동안 나는 이곳저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불려 다녔다. 판매자들, 책방에서 책을 사거나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 주차 공간을 찾는 사람,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지인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이웃 마을에서 찾아오고, 강화로 나들이 가는 길에 잠시 들르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지인들도 있었다. 플리마켓을 찾는 이가 없으면 어쩌나, 물건이 안 팔릴까, 걱정했던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어느덧 해가 서쪽 하늘로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주자 세 명이 무대 위에 앉았다. 하모니카 선생님이신 우리 마을 목사님, 그리고 수제자 두 명이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했다. 그 수제자 중 한 명이 책방 주인이자 남편이다. 진지하면서도 조금은 삐딱하게 하모니카를 부는 그의 모습을 보니 다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툴지만 소박한 하모니카 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렸다. 리더이자 하모니카 선생님이신 목사님은 마당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카주라는 작은 악기를 나누어 주셨다. 카주 부는 법을 알려주신 후 기타 반주에 맞춰 다 같이 ‘Amazing Grace’의 한 부분을 불렀다. 즉석에서 그럴싸한 합주가 이루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다음은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세 명의 연주가가 각자, 또 같이 연주했고, 마지막으로 하모니카 동아리와 협연했다. 전문가들도 아니고, 함께 연습했던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음향시설도 좋지 않은 야외무대다. 얼마나 긴장되어겠는가. 투박하고 끊어지듯 이어지는 하모니지만 연주하는 이들의 손끝은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음악을 듣는 청중들도 귀 기울여 들으며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서서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쇠기러기떼가 날아가며 우는 소리가 하모니를 더했다. 그 모습은 포내리만의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같았다.



올해 처음으로 참여한 판매자는 너무 좋았다며 내년에도 꼭 불러 달라고 했다. 누군가 말했다. 플리마켓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행복한 미소를 보았다고. 그래서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또 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플리마켓이 끝나고 나면 온몸에서 아우성친다. 몇 날 며칠 뒷정리하는 남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몸만 힘든 것이 아니다. 수익보다 지출이 훨씬 많다. 시간 내서 참여한 판매자들의 수익도 걱정된다. 멀리서 시골 책방을 찾아온 사람, 음식 하느라 온종일 고생한 분들, 고맙고 미안함이 가득하다. 플리마켓은 올해로 끝이라고, 다시는 하지 말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내년에는 누구를 초청해야 하나? 어떤 이벤트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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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도 멋졌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