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아

시골책방입니다.

by 작은 의미

“오늘 예약했는데요, 어떻게 가야 하나요?”


“어디서 오시나요?”


“신촌 쪽에서 가려고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해요.”


“아… 그러면 3000번 버스를 타고 김포대 입구에서 내리세요. 정류장으로 마중 나갈게요.”


전화기 너머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맙지만 미안하다며 극구 사양했다. 본인이 직접 걸어오겠단다. 우리 책방은 정류장에서 1km를 족히 걸어야 한다. 거리도 거리지만, 해가 지면 사방에 암막 커튼을 친 듯 깜깜해지는 게 시골길이다. 초행길인 여성이 혼자 걷기엔 웬만한 놀이동산 귀신의 집보다 스릴 넘칠 터였다. 결국 도착 두 정거장 전에 연락을 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덩치 큰 남편 대신 내가 자동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나갔다.


차에 올라탄 그녀는 아무 준비 없이 퇴근길에 훌쩍 떠나왔다고 했다. 고된 직장 생활 중 숨 쉴 구멍이 필요해 무작정 검색해서 찾은 곳이었다. 그녀는 이틀간 우리 집에 머물렀다. 낮에는 마을을 산책하고, 해 질 녘엔 마당에서 서산 너머로 퇴근하는 해를 바라보며 간단한 저녁을 지어먹었다.




가끔 북스테이에 혼자 오는 손님들이 있다. 나도 기차 여행이나 올레길 걷기 등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지만, 호스트가 되어보니 혼자 온 손님에겐 유독 신경이 쓰인다. 밥은 챙겨 먹었는지, 밤에 무섭지는 않은지, 잠자리는 편안한지 자꾸만 살피게 된다.


한 번은 2박을 예약한 손님이 낮에도 내려오지 않고 기척조차 없어 가슴을 졸인 적이 있다.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늦은 오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종일 잤어요. 그동안 못 잔 잠을 여기서 다 몰아 잤나 봐요.”


그제야 우리 부부도 안심하며 함께 웃었다. 시골 책방은 때로 거대한 요람이 되기도 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예약 없이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에게 책방은 유독 넓어 보였다. 나는 도어록 사용법을 알려주며 주인집이 바로 옆이니 안심하라고 다독였다. 혼자 있고 싶어 왔으면서도, 혼자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다음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그녀가 마당에 앉아 있었다. 하룻밤만 묵으려던 계획을 바꿔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은 터였다. 어제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이었다.


“어제 남편이랑 대판 싸우고 홧김에 온 거예요."


그녀는 남편에게 하루 더 있겠다고 '통보'했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그 통쾌한 승부수가 그녀를 어제보다 훨씬 가볍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엔 마침 북클럽 모임이 있었다. 그녀는 옆 테이블에 앉아 본인의 책을 읽다가, 어느샌가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임이 끝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는 내 말에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제가 오늘 하루 더 있겠다고 떼를 쓴 불청객인걸요.”


그녀는 이틀을 꽉 채워 지내고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번엔 남편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틀 동안 본인이 어디를 걸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신나서 설명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애정이 듬뿍 담긴 유쾌한 부부였다. 그녀는 우연히 찾아왔던 책방이 좋았다. 좋은 곳을 가고, 좋을 것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누구랑 다시 와 봐야지.’ ‘누군가에게 꼭 소개해 줘야지.’ 그녀에게 그 누구가 남편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혼자 여행을 떠나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남편이니까.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

혼자 북스테이로 온 사람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층간 소음을 피해 도망치듯 온 손님도 있었다. 그는 우리 집의 고요를 보약처럼 들이키며 '귀의 휴식'을 취하고 갔다. 덕분에 우리 집은 뜻밖의 요양원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집중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찾아온 작업자도 있었다. 그녀의 48시간은 몰입의 시간이 되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타인에게 가 있던 시선을 오롯이 나에게로 돌리는 시간이다. 늘 남의 안부를 묻고 감정을 살피느라 정작 내 마음의 안녕은 뒷전이지 않았던가.


혹시 혼자만의 여행이 두려운가? 여기엔 단단한 잠금장치와 옆집에서 대기 중인 든든한 호스트, 그리고 수많은 책과 산책로가 있다. 이만하면 혼자라도 꽤 괜찮지 않겠는가.


나도 조만간 나를 위한 북스테이를 떠나야겠다. 2박 3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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