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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Feb 24. 2024

포기하지 않을 용기


1년 6개월동안 이어진 젠더살롱 마지막 원고다. 


처음 연재 제안을 받으며, 내가 과연 이 글을 쓰는 게 맞을까 고민이 많았다. 격주로 그만한 글을 쓸 자신이 없었기도 하거니와, 이게 다분히 젠더권력에 기인해 있음을 알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어떻게든 6개월만 해보자고 시작했다가 어찌저찌 1년 6개월을 채웠다. 이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더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할 때지 싶다. 미련이 안 남을 수는 없어서 마지막 원고는 회고에 가까운 글을 썼다. 글 쓰면서 유념했던 마음, 아쉬웠던 지점, 앞으로 희망하는 바 등을 남겼다. 



최근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막막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당장 어느 지역은 성교육 예산이 반토막이 났고 다른 어느 지역은 그마저도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욱 무서운 건 이게 바닥이 아닐 것 같다는 거다. 아마 앞으로 꽤 긴 시간 어려운 나날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와 주변을 챙기며 고난의 시기를 버텨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다만 또 생각해보면 역경은 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지난날이라고 뭐 대단히 호사롭지 않았고 역경에 낙담하고 앉아 있자니 머쓱해서... 비극에 물들어 있기보다, 약간 망한 세상에서 휘파람 부르고 또 가끔 춤도 추면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이 돼야지 싶다. 



<'젠더권력' 가진 남성이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올해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을 한 지 8년이 됐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페미니즘 책이라도 읽어보려고 했다가 도저히 책만 읽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나선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집회에 참여하고 교육에 뛰어들면서 드는 고민과 생각을 말할 길 없어 글을 쓰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상은 이런 사람과 글을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롭게 여겨 과분한 기회로 한국일보 젠더살롱 지면에 글을 실을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남성화된 글쓰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존경하고 애정하는 동료 페미니스트 박정훈 기자는 자신의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서 수많은 칼럼니스트가 자신을 ‘보편’의 자리로 위치시키고 타자를 심판하는 형태의 글을 쓰는 것을 언급하며 ‘남성화된 글쓰기’라 지적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내 한계를 인정하며 타자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기보다 함께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늘 마감에 쫓기고 성찰 없이 살아온 날이 길어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고 서툴렀음을 수줍게 고백해 본다. 



남성의 위치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어렵다. ... 글은 차라리 쉽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주변에서 누군가 여성에게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자칫 잘못 오지랖 부리면 여성의 발언권을 빼앗게 될 것 같고 가만히 방관자가 될 순 없어서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만약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이 여성이었다면? 문제를 바로잡으면서도 '맨스플레인'(남성이 설명을 가장해 여성을 훈계하는 행위)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별이분법과 생물학적 성별에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의 위치를 고려하면서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답 없는 고민만 자꾸 쌓인다.



우리의 활동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기를


활동을 잘 기록해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단지 비대한 자아 때문만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언제 이 활동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역시 가지고 있다. 혹시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누군가 배턴을 이어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랄 수 있다면 그게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답답하고 느린 나를 포기하지 않아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 당신들이 포기하지 않아주어서 생긴 작은 균열이 이렇게 뿌리내려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잘 기록해두면 누군가, 언젠가 지쳐 쉼이 필요할 때 슬쩍 들춰보면서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됩시다.”


페미니즘 운동 현장에서 널리 퍼진 목소리이자 좋아하는 책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에도 나오는 문장이다.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변화에 함께할 것임을 다짐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어두운 과거를 밀어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모두를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11008000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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