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정 와중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이 얼마나 좋은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으나 ‘남성성’이라 불러도 좋을 괜한 거부감과 게으름에 도저히 내 발로 스스로 상담센터를 찾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서울시에서 하는 상담 지원을 받았다. 총 5회기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횟수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고 무료기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래도 막상 상담 일정이 다가오니 괜히 걱정이 앞섰다. 별로 상담할 거리도 아닌데 괜히 신청했나. 어차피 내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이걸 이야기한다고 뭐 해결이 되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으나 어떻게든 일정은 잡혔고 상담을 진행했다.
일단 소감부터 말하면, 상담받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다고 막 극적인 변화라던가, 티비에서 보듯 눈물을 쏟고 나오는 장면이 있지는 않았다.
공황이 왔던 일들, 이후 관계에서 겪은 불화, 그로 인해 들었던 분노와 실망감, 이후 찾아온 상실감 등등을 제법 담담하고 또 꽤나 우습게 이야기했다. 차라리 그러고 나니 오히려 뭔가 정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해결된 것은 없다.
여전히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진행 중이고, 관계는 어그러졌으며 상실감은 여전하고 슬픈 감정은 표출되지 않는다. 망가진 와중에 감정을 직면하기 두려워 닥치는대로 일을 받았더니 이제는 일더미에 쌓여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소리내어 이야기 한 뒤로, 내가 왜 슬픈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그렇게 섭섭했는지, 왜 그렇게 상처받았는지, 이해 못할 일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공황 이후 병원에 갔을 때는 의사 선생님이 차분하고 또 가벼운 목소리로 공황이 별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불안을 가라앉혀주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공황이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라는 견해를 이야기해주었다. 수많은 일들에, 닥쳐오는 걱정과 불안을 오롯이 혼자 느끼고 책임져야 하는데서 오는 고립감. 지난 일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왜 그토록 자주 손발이 차가워지며 불안에 떨었는지 이해가 됐다.
내 같잖은 남성성의 일환으로 ‘돌봄’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있다.
혼자, 오롯이 괜찮은 사람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돌봄을 터부시했다.
그 결과는 하나도 유쾌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지금 이 상태다.
아무래도 다음 활동과 연구 주제는 돌봄과 남성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 배움이 과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