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 예방교육과 남자청소년, 박사방과 조주빈

by Nut Cracker

어제 오늘 연달아 다른 중학교에서 디지털성폭력 예방 교육을 했다.

어제는 2학년, 오늘은 3학년. 분명 같은 강의안에 컨디션도 비슷하고 내용도 거의 유사하게 진행 했는데 어제 참여자 반응은 적극적이었던 반면, 오늘은 참여를 이끌어 내기가 어려워 고생했다. 애초 반 분위기가 조용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인원 수 차이도 한 몫한 것 같다. 그래도 분명 눈이 반짝반짝한 참여자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일희일비하지 말고 천천히 강의 전반을 톺아봐야지. 강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 했으니 이번에는 강사 컨셉(태도)과 강의 현실, 남자 청소년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려고 한다.


먼저 ‘강사 컨셉’은 참여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져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다. 이 활동에 젊은 강사, 특히 젊은 남자 강사가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지점이 있다. 희소성으로 인해 쉽게 관심을 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전문성이나 능력에 대한 우려를 사기도 쉽다. 강사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과 교육 참여자의 다양한 측면을 두루 고민하여 컨셉을 정한다.


예를 들어 (아직 기회가 많지 않지만) 중장년 교육 참여자를 만날 때는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열정 넘치는 청년’ 컨셉을 잡는다. 물론 강사소개 할 때는 전문성을 보여줄만한 자료를 채워넣지만 그래도 강의 전반에는 자식의 마음을 대변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해야 어느 정도 거부감과 무시를 극복하고 성인지감수성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 아주 처음에는 무조건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안그래도 과중한 학업 스트레스로 지쳐 있는데 거기에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았고 가깝게 다가가야 조금이나마 듣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교육 내용에 비해 다소 가볍게 느껴져서 자칫 오해를 사거나 교육 내용도 진중치 못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또 친근하게 대한다는 명목아래 너무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호칭도 최대한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끔 사용하고 친근하되 너무 가볍지는 않은 이미지로 컨셉을 잡고 있다. 이번 교육에서도 앞단에 가볍게 취미생활 이야기 등으로 관계맺기를 하고 수업 중간중간에는 눈맞춤과 초콜렛 보상을 주는 것 정도로 자제했다. 길어야 1~2 시간 수업에서 이것보다 더 친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목적은 교육내용 전달이고 교감은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럼에도 계속 아쉬움이 드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강의 현실 때문이다.

학교에는 일 년에 고작 한 두시간의 수업이 전부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다니며 강의를 한다. 좋게 보면 씨앗을 널리 뿌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중물도 채 되지 못하는 강의를 이곳저곳에 아쉽게 두고간다고 느껴질 때가 더 많다. 교감에 대한 고민도 이런 지점에서 이어진다. 조금만 더 시간이 넉넉하게 있었더라면, 몇 차례라도 수업이 더 있었더라면 한 번에 무슨 컨셉까지 정해서 교육내용과 교감을 때려박는 일은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단적으로 지금 한 대안학교에 한 학기 정도 꾸준히 교육을 나가고 있다. 교육 참여자 중 한 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얼굴을 본 한 학기 동안 그런 반감이 상당히 많이 누그러든 눈치다. 교육이 그리 대단했을리 없고 그저 필요한 건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 성평등 활동을 하면서 폭력예방교육을 선택한 까닭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남성과 접점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함페에서 교육을 하면 어차피 관심 있는 사람만 오고 폭력예방교육은 그래도 의무교육이니까 더 많은 남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남성을 만나 교육을 하고 있고 우려한 것보다 반발이 많이 심하지는 않다.(남자 강사라서 덜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폭력예방교육을 하면 남자 청소년들은 이 교육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것을 너무 빠르게 눈치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대체로 강의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관심 없는 척을 한다. 다년간의 단체 생활로 길들여진 학생들은 선생의 관심 밖이 되는 경험, 그 무력에 익숙해져 있다. 이 무력은 분노, 반발감으로 옮겨가기도 쉬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폭력예방교육에서 기계적 중립을 이야기 하거나 남자청소년에 관심이 쏠릴 수도 없다. 다만 필요한 건 우리사회의 젠더권력구조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것이 어떻게 젠더기반폭력으로 이어지는지까지 차분히 설명하는 시간인데 여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담할 뿐이다. 어쩌면 욕심일 지 모른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부족한 내가 모든 것을 다 전달하겠다는 욕심은 나와 교육 참여자를 괴롭힐 뿐이다. 교육참여자의 속도를 존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기꺼이 해내는 게, 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리고 실로 교실 안에서 이야기 되는 내용은 이들이 받을 무수히 많은 교육 중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박사방 주범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이, 공범에게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5년의 징역형이 선고 됐다. 이들의 죄에 비하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 우리사회 활동가와 페미니스트가 고군분투하며 만들어낸 진보다. 이 진보 덕에, 나부터도 강의를 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오늘, 무관심하게 내 강의를 들은 어떤 이도 훗날 기사를 보며 생각을 더할 날이 올지 모른다. 덕분에 후세대는 한 뼘 쌓아올린 진보에서 출발할 것이다. 한 뼘 한 뼘, 조금씩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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