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친구 대한육군, 성평등 교육 후기

by Nut Cracker

강한 친구 대한육군, 성평등 교육 후기


남함페 활동 초창기부터 꿈꿔왔던 군대에서의 교육이 현실로 됐다. 연천에 위치한 부대에서 일선에 있는 직업군인을 대상으로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요청해서 지난주 각각 다른 부대에서 두 차례 진행하고 다음주 또 각각 다른 부대에 두 차례 강의를 남겨두고 있다.


군대에서 하는 성평등 교육.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너무 피하고 싶었다. 필요한 이유야 뭐, 더할나위 없이 많은 남성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피하고 싶은 이유도 마찬가지로 더할나위 없이 많은 남성을.. 우르르 만나서 이야기해야한다는 점… 허나 살면서 제 입맛에만 맞는 일을 하고 살 수는 없지. 애당초 그런 것만 할거였으면 활동도 안했겠고... 여튼 그렇게 찾아간 연천은 참 멀었다. 날이 좋고 숲이 우거지고 도로도 잘 뻗어 있었지만, 그래도 참 멀긴 멀어서, 강의는 두시부터 네시까지 2시간인데, 출발하고 집 도착하는 시간은 10to18이다. 묘하게 직장인이 된듯한 느낌이다.


거두절미하고 강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정말 앞서 걱정한 게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대부분 내 또래의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이들은 방탄을 막 벗고 들어올 정도로 근무가 끝남과 동시에 강의를 들어야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꼿꼿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졸릴 때엔 슬그머니 일어나서 잠을 쫓는 사람도 있었다. 편견과 달리, 오히려 그 어떤 다른 교육환경보다 수용적이고 저항도 크지 않았다. 대부분 성평등 교육에서 맞닥뜨리는 저항의 근간에 ‘억울함’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곳에서는 그 억울함을 내비치는 게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썩 좋지는 않지만, 두 시간짜리 교육에 모든 것을 다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의협심으로라도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차별을 막는다면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실 처음에는 나도 사람인지라 군복입은 건장한 사내 사십여명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부담이었다. 그래서 조금 추잡스럽다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별로 있지도 않은 군 생활 기억을 팔며 관계를 쌓았다. 특히 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인지라 육군의 모토인 ‘강한 친구’를 두고, 획일적인 독재 체제의 북한과 비교하며 강함이란 ‘다양성’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로 어필했다.


이어서 조직생활을 하며 발생하는 온정적 성차별주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군대에서는 사건사고를 미연에 예방한답시고 여성 군인과 거리를 두거나 주요 역할에서 배제하는 경우 등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리어 이런 것들이 성차별의 일환임을 언급하며 의도치 않아도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발견하고 개선하기 위해 성인지감수성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당근이 필요했다. 어쨌든 교육에서 ‘사건사고’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하면, 이들은 또 다시 움츠려들 수 있기에, 세상이 성평등하게 변해가고 있고 그런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 남성도 함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결국 남성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특히 중년 남성의 고독사와 관련한 지점에서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정표현을 터부시하며 자라오고 가족 구성원과 교감하고 관계를 쌓기보다는 밖에서 노동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라고 보고듣고 배워온 까닭에, 많은 중년 남성이 가정 내에서 문제를 겪는다. 남성성이라는 그들을 고독하고 힘겹게 만드는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게 가장 큰 당근이지 싶다.


물론 저항하는 태도가 아예 없지는 않았고, 팔짱을 끼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이 경우는 참여활동이 도움이 됐다. 간단한 참여 활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며 교육 내용이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했고 그 사이사이에 교육자가 끼어들어 함께 얘기하거나 듣거나 하면서 교육자와의 거리감도 좀 좁힐 수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을 정해놓자 질문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어떤 질문은 질문이기보다는 검증에 가깝긴 했다. 예컨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인지, 조현병 환자의 우발적 살인인지, 이수역 폭행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분히 의도가 느껴져서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이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물어보거나 페미니스트의 의견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겠단 생각도 들어 기꺼이 친절히 대답했고 또 교육에서 그게 필요했지 싶다. 이어서 공정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기업은 ‘능력’으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성평등하지 않다고 여성을 ‘더’ 뽑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역차별 아닌가”, “‘여군’이라고 전쟁났을 때 총탄이 피해가는 게 아닌데, 체력검증도 동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간이 부족했을 때는, ‘여성할당제’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고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시간이 조금 더 넉넉하여, 여성할당제의 필요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었다. 김연아, 손흥민 선수를 예로 들며, ‘능력’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분명 이 선수들의 능력은 대단히 뛰어나고 그 능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개인의 끊임없는 노력이었겠지만, 만약 이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냥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 잘 치고, 오줌보로 만든 공 잘 차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능력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빛을 발할 수 없으며 그것이 이루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없음을 말했다.


체력검증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까? 사실 일견 일리가 있고 성별에 따른 차이를 두는 게 일종의 온정적 성차별주의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다만 지금 몸을 둘러싼 차별적 현실을 반영한 조치라 생각해야 할까? 나아가서 이건 진정직업자격 요건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고 그 차이를 군에 복무하는 여성 개개인에게 묻는 게 아닌, 차이를 두는 국방부에 물어야 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최근에 여경 준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체력도 똑같이 하되, 차라리 여성, 남성 경찰 다 열어놓고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라. 남경은 더 많이 뽑기에 필기성적 커트라인이 더 낮다고.. 그런 점을 지적하지는 않는 부분도 한 번 살펴볼 수 있겠다.


강의가 끝나고, 평소 다른 강의보다 훨씬 기진맥진했지만 그래도 진짜 좋았다. 이렇게 강의할 자리가 만들어진 것도, 성고충 전문상담관님이 계신 덕분이었다. 군대 내에 여성 군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 중에서도 장기 복무를 꿈꾸는 여성 군인이 최전방으로 오면서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귀한 자리가 생겼다. 허투루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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