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함페 워크숍 후기

by Nut Cracker

무엇이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가

좋은 책과 교육, 따뜻한 보금자리와 맛있는 음식, 개인의 의지와 노력 모두 너무 중요하지만, 나를 가장 성장시킨 가장 큰 힘은 주변인들의 따뜻한 돌봄이 아니었나 싶다. 머리로만 하고 있던 생각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 어제 남함페 워크숍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후기를 남겨야지.


다들 본업으로 바빠 추석 연휴에 워크숍 일정이 잡히게 됐고 자원도 충분치 않아 공간 섭외부터 난항이었다. 골머리를 앓던 중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주변 수많은 페미니스트 동료가 기꺼이 공간을 내어 주겠다고 연락을 했다. 이유는 그저 동료니까. 내 주변의 페미니스트 동료가 어려움 없이 활동했으면 하는 마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같은 것. 모두에게 성은이 망극하고 들숨날숨에 건강과 기쁨이 가득하기만 바랄 뿐이다.


무사히 공간을 빌린 후, 남함페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을 기획, 진행했고 느슨하게 묶여 있던 사람들 중 무려 열일곱 명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모두가 기꺼이 연휴를 포기해가며 모였고 개중에는 자신의 시간과 품을 들여 같이 활동을 기획, 레크레이션을 짜고 내규를 작성하고 이후 활동을 위한 의지를 내준 사람들이 있었다. 멀리 대전에서 성심당 빵을 사들고 온 사람들이 있었고 당장 다음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떠나야 할 사람도 있었으며 각자의 바쁘고 귀한 일정을 쪼개고 쪼개서 여력을 내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삭막하고 분절된 도시에서 살며 타인의 행동을 값으로 매기는 것이 익숙했던 내게 이런 대가없는 애정과 돌봄은 우리가 결코 혼자 살고 있지 않고, 혼자 살 수 없음을 감각하게 했다.


오전은 정민 쌤 100% 핸드 메이드로 기획, 진행한 레크레이션이었는데, 진짜 페미니스트 특유의 개그와 감동이 살아 숨쉬는 시간이었다. 제주도 창조신화 ‘마고할미’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내 애인이 페미니즘 활동가였으면 좋겠다”는 질문에서는 집회 데이트를 하겠다는 낭만과 한 명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맞부딪혔다. “나는 가끔 페미니즘을 몰랐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에는 거의 대부분이 X를 들며, ‘짐승이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모르던 때가 더 고통스럽고 불행했다”, “못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등 진심어린 얘기들이 나왔다. 역시 클라이막스는 “나에게 남함페란?”과 “나에게 페미니즘이란?”이었는데, 솔직히 남성성 아니었으면 이 대목에서 눈물 훔쳤을 것 같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얀 종이가 너무 작으니까 참여자들 이야기로 갈음하면, 나중에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페미니즘 해야겠다 싶었다.


오후 활동은 앞으로 남함페 활동 구조를 만드는 치열한 토론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규, 시스템 이런 것들에 문외한이라 여기서는 전적으로 프리젠테이션 화면만 만졌고 너무나 다행히도 나의 부족분을 넘치게 채워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연웅님은 남함페의 현 사정과 상황을 고려하여 그것이 더 잘 기능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내규 초안을 구성해 발표했고 참여자는 열과 성을 다해 이에 의견을 보탰다. 물론 각자의 경험과 고민이 다른만큼 생각이 다른 지점도 있어서, 때로 의견이 부딪치기도 했으나 분명 그 방향이 단체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서 더 나은 활동으로 향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논의는 더듬더듬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꼴을 갖췄다. 부족한 것은 이제 활동으로 채워야지.


과거 워크숍으로 전주까지 가서 밤늦게까지 회의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때 놓친 가맥집이 아직까지도 서러워 이번 워크숍은 기필코 일찍 끝내고자 했고 다행히도 결단력 있는 사람들 덕분에 회의는 7시가 되기 전에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뒷풀이를 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술자리가 대체 얼마만인지. 이 맛에 활동을 했지 느끼며 정말 목이 쉴 때까지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활동가 종특으로 모든 이야기는 결국 활동으로 수렴됐다. 개중에서도 조직에 대한 얘기가 가장 와닿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개인적으로 조직은 넘나 어려운 과제다. 자고로 활동판에서 조직이라 함은, 사람들에게 서스럼 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만나서 밥먹고 술 마시다가 춤도 한 번 추고 노래도 부르는, 그런 호탕한 모습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외향인 중에서도 내향인에 가깝고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보수적일 수 없으며 불안도 크고 겁도 많은데다 체력까지 나빠서 계획적 일과를 준수하는지라 낯선 이와의 이벤트성 만남은 될 수 있는한 피해왔다. 결국 내가 쌓은 안온한 성에서 자족하고 또 한편으로는 외로워하는 모순을 겪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 벽을 느끼며 실망하거나 섭섭해하고 때론 떠나갔다.


이 성벽이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자기방어기제일 수도 있고 성격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안에 남성성을 재료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혼자서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어릴 때부터 그려온 이상적인 모습의 존재는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부탁하기를 어려워하며 돌봄을 터부시하게 했다. 이제 그 알을 깨고 나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또 그렇다고 지금부터 사람들과 술을 퍼 마시며 조직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페미니즘 단체에서 그런 조직이 가능할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데다가, 애초 그것만을 조직으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협소한 상상력이라는 지적이다. (ft. 재섭님) 무엇보다 조직에서 필요한 건, 함께 활동하는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이 활동을 왜하는지 잘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하는 것 같다. 그를 위해 벽을 트고 함께 자원을 노나가지는 경험을 해야지. 분명 줄 수 있는 게 있다. 그게 당장의 자원은 못될지라도 비전이라던가 경험, 동료됨 같은 것. 조직에서 막내인 경험만 하고 나왔더니 여전히 스스로를 막내인 줄로 착각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막내가 아니다. 나이도 위치도.

남함페에서 같이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남자 청소년 대상 교육도 확대하고 싶고,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도 이어가고 싶다. 남성 섹슈얼리티 탐구 연구도 더 필요하고 남성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나 대화모임도 기획해보고 싶다. ‘아빠’에 대한 기억을 담은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다. 나눠보고 싶은 의제도 많고 다양하다. 군대, 성매매, 남성의 돌봄 등등. 하고 싶고 해야할 건 많은데, 막상 활동가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아 더 조급했던 것 같다. 흔히들 활동가의 다음은 어둡게만 그려지니까. 나부터도 막연히 번아웃, 불화, 과로 같이 지속가능하지 못한 미래만 떠올렸다. 이런 어두운 미래의 배경에는 동료를 떠올리지 못하고 부담을 오롯이 혼자 져야한다 믿었던 오만과 자의식 과잉이 있다. 동료가 생기고 함께 활동하며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활동가의 다음은 마구 불행하지도 되게 거창하지도 않은, 그저 조금 더 성장한 활동가, 어쩌면 조금 노쇠한 활동가가 아닐까.


곱게 늙은 활동가가 된 다음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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