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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롤로 Jan 08. 2021

#1. 딸은 시집가면 끝이데이 (1편)

나는 90년대생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는 손자들의 사진을 올려둔 장이 있었다. 친손자, 외손자들의 돌사진. 외손녀의 돌사진도 있었는데, 친손녀의 사진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 사진은 없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 할머니, 왜 내 사진은 없어?!

 "딸은 시집가면 끝이데이~" 


- ???


이게 무슨 말씀인가. 딸은 시집가면 끝이라니...! 꽤 충격적이었다. 그 당시 들었던 생각은, 여자는 결혼하면 할머니도, 부모님도 못 보고 지내야 하는 건가 했다. 나는 되물었다. 더 충격적인 할머니의 말씀. 


- 왜, 왜, 왜?!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야?! 

"딸은 낳아봤자 소용없어~"


이 말이 어찌나 서럽던지, 아주 서러웠다. 시집가면 끝이라니, 할머니도 여자면서, 딸이면서, 손녀에게 딸은 시집가면 끝이라니, 딸은 소용없다니...! 그럼 왜 시집가면 끝인 손녀에게 깊은 애정을 주신 걸까?! 손녀에게 냉혹한 현실을 미리 알려주고 싶으셨던 걸까?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믿을 수 없다. 그때 다짐했다. '할머니한테 시집가면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어!' 라고.




아들이 귀했던 시대 

 


우리 할머니를 이해하기 위해선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시대, 아들은 귀했다. 할머니의 시아버지,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늘 '아들, 아들, 아들'만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큰아들네(큰할아버지)에 7남 3녀를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막내 며느리였던 할머니는 큰아들인 우리 아버지를 낳고, 그 아래로 '딸, 딸, 딸'  고모 셋을 낳았다. 


할머니가 큰아들을 낳은 후, 딸 셋을 낳는 동안 증조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손녀들을 보러 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시절 그랬겠지만) 그러다 삼촌을 마지막으로 낳았을 때, 증조할아버지는 미역을 사들고 한달음에 오셨단다. 


10년 넘게 치매셨던 우리 할머니, 이 이야기를 매일 같이 하셨다. "내가 아들 하나 낳고, 딸딸딸 낳았는데 한번도 안 오시더니, 마지막에 아들 낳았다는 소식에 오시드라.." 하루에도 이 이야기를 몇번을 하셨다. 기력이 없으시고, 가족을 못 알아보시는 단계가 됐을 때는 마치 주문을 외듯, "딸, 딸, 딸. 아들 ... " 을 반복하셨다. 


치매였던 할머니가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들 낳고 시아버지가 오셨던 날'이 할머니께는 여자로서, 며느리로서 '잘한 일'이었기 때문일까? 마음이 착잡하지만, 그저 그날이 행복했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거라 생각하고 싶다. 

 



지금은 딸 셋이면 '금메달' 


이제, 그 당시 20대였을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해보자.  첫아들을 낳고, 그 밑으로 딸 셋을 낳는 동안,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시아버지에게 아들을 안겨드리며, 사랑받고 싶으셨을까, 예쁜 딸들을 '셋이나' 낳았는데, 요즘 같으면 금메달인데, 그 당시 할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을 낳고, 딸을 셋이나 낳았는데도, 소용없던 '시대적 상황'이었을 거다. 그래서 당신 마음에 생채기 내며 딸은 낳아봤자 소용없다고  어린 손녀에게 말 하셨던 거다. 


그 시절 여성으로서, 며느리로서, 아들을 낳는 일. 이상한 유교 때문에 우리네 어머니, 우리네 할머니에게 말하지 못 할 아픔이 있었다. 그 아픔을, 어디 말은 못하시고, 딸에게, 손녀에게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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