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제안, 비로소 시간의 주인
작고 연약한 현세 도비의 유일한 무기는 사표이다. 어느 날의 결심 한 번이면 도비는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월급게이트 통장을 스쳐가는 월급 없이 그저 가벼워짐을 감수해야지만 말이다.
육아휴직 때 알게 된 이직플랫폼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큰 공수 없이 간단한 스펙을 올려놓기만 해도 간간히 재밌는 제안이 왔다. 서류문턱을 넘어 본 적은 없지만, 제안이 올 때마다 조금씩 자존감이 회복된다. 아직은 쓸모 있는 인간인 것 같고, 딱 그 정도 역할이었다.
한창 산타할아버지들의 갑질에 휘둘리고 있을 때였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제안이 왔다. 유관업종이 아니어도 내 경력을 우대하며, 겪어보지 못한 시장과 제품에 대해서는 충분히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기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이직을 원했다기보다는 환기가 필요했다. 아마 다수의 직장인이 그럴 것이다. 가슴에 푸념하나 품지 않은 이 가 어디 있겠는가. 그 푸념을 이력서로 토해내는 것이다. 내 언젠가, 후련하게 김 부장의 뒤통수를 후려치리라,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흔히 말하는 금수저들의 인생옵션은 태초부터 갖추어져 있다. 가장 쉬운 이정표를 미리 탑재하고 태어나는 듯하다. 나는 아니다. 노력하는 만큼 처지가 달라진다. 어쩌다 얻어걸림이라는 것은 없다. 철저히 노력해야 옵션이 생기고, 그래야 꾸역꾸역 당첨되곤 했다.
이력서는 화려하게 포장하고 싶었지만, 전혀 다른 분야라 소구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간 잔인하게 떨어졌던 서류들을 훑어보고 담백하게 정리하여 전달했다. 잠을 줄여 낸 시간이었고, (그래봐야 한 시간이다) 다음날 하루 평소보다 좀 더 피곤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치열한 전투현장으로 돌아갔다.
전투력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이력서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 때쯤,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33세, 기혼자, 아기엄마인 나를? 왜?
넘어야 할 난관이 하나 더 늘었다. 회사에서는 산타할아버지를 달래고, 집에선 아이를 달래고, 모처럼 온 이 기회도 잡아야 한다. 사력을 다해야 한다. 나에게 선택권이 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