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임 -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시간
해외거래선을 관리하다 보면, 지역별 거래선의 고유한 특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럽거래선을 담당할 때였다. 나의 고객들은 신사였다. 하나같이 그랬다,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우리네 을에게 너그러웠다.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장소에만 가져다주면 더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역시 직장은 운칠기삼, 거래선 빨은 내가 그간 쌓은 공덕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장에서 아주 작은 트러블이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파악해 본 사유는 우리 제품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선배들도 있었다. 모두 잘 넘어갔다고 했다.
젠틀맨들도 우리의 분석을 완벽히 이해했다. 그리고 지독한 갑질이 시작되었다. 상식 수준을 넘은 요구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요구는 통보였다. 협의점을 찾고자 했던 우리의 노력은 애초부터 무용했단 것이다. 믿었던 산타할아버지들은 우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지 않으셨다. 그들은 갑이다.
비상체제로의 전환이 이어졌다. 낮엔 각 파트가 대응 자료를 준비했고, 화상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상사, 동료, 후배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휴일을 반납하고 저녁 없는 삶이 반복됐다. 힘들긴 했지만 어떠한 불만도 없었다. 갑질에 꿈틀이라도 해보는 것은 을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기에.
지금 생각하면 그저 피해 갈 수 있다면 피했어야 했을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고난이 스스로를 발전시켜 주리라 확신했다. 갑을 향한 상사들의 노련하고 당당한 대처에 감탄을 하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당당한 을이 되고 싶었다.
자기 최면은 얼마가지 않았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주로 심적인 것들이었다. 산타가 준 배신감에, 을의 설움에... 유래 없는 몸살과 원인 모를 설사가 3주간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분명히 본능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날도 같은 문제로 쉴 새 없이 바빴지만, 본능적으로 휴가를 내고 의심되는 모든 질병을 검사해 보았다.
그리고 금세 다시 잔잔하고 고요해질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삶이 비로소 요동쳤다.
나는 암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임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