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될 거예요 ‘
아토미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일정 관련 연락이 왔다. 포기했던 이직이다. 상황이 여유롭지는 못했지만, 포기했던 것들을 최대한 찾아와야 했다. 그래야 아토미의 부재가 무뎌질 것 같았다.
1차 면접은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윗옷만 정장을 입은 채 카메라 각도를 조절했다. 문밖의 지우 소리가 잠잠해진 것 보니,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해 준 듯했다. 면접은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화면 저편에 정중한 면접관들이 앉아있었다. 늦게 시작된 사유를 설명하며 미안하다는 면접관의 말에 밝게 웃어 보였더니,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경력직 면접은 9년 전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면접이라기보다는, 면담에 가까웠다. 나의 경력을 설명하고, 성과는 숫자로 표현했다. 30분간의 화상면접이 끝나고, 다시 출근채비를 했다. 나의 생활에는 쉼이 없는 편이 나았다.
결과가 궁금해질 때쯤 합격 통보가 왔고, 최종면접일이 정해졌다. 이직이라는 것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시간은 세월을 샘을 내며 달려갔다.
D-day
평소와 달리 화장도 하고, 깔끔한 옷을 입고 출근했다. 오후 반차를 쓰고 면접장으로 향했는데, 대기 중일 때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떨릴 새도 없이 면접관 앞에 앉아 있었다.
면접관은 총 두 명이었고, 두 분 다 여성이었다. 엄마이기도 했고. 한분은 지원한 사업부의 본부장님이었고, 다른 한분은 인사팀장님이었다. 뒤통수가 댕댕 울렸다. 여자이니까, 엄마이니까, 하던 나의 빛 좋은 핑계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면접이라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까웠겠다. 마지막엔 스스로 한계를 두고 있었는데, 두 분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 금방 되실 거예요.
여성임원을 처음 본다는 나의 우둔한 말에, 면접관이 말했다. 나도 금방 될 거라고. 낯선 곳에서 들이킨 시원한 공기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이 설명 못할 필연의 시간은 아토미의 선물이리라.
나는 잿빛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아이 등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이 어딨겠냐만, 아직 이렇다 할 푸념이 없어 이젠 이력서가 아닌 이야기를 쓴다.
폭풍 같던 한 해가 저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30대는 안정적일 것만 같았다. 잔잔히 흘러가던 인생에 돌하나 던져져 무참히도 흔들렸다. 많은 것을 잃고, 아주 조금 나아졌다. 아직 이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이라 할 수 없이 ‘진행 중’ 이지만, 나는 이제 주저하지 않는 편이 되기로 했다.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