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없어도 불안한 연애의 이유.
몇 달간 이유도 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심장이 뛰고 불안했다. 명상도 시작해보고 나를 힘들게 했던 회사도 그만두고 많은 것들을 바꾸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밤새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들은 무엇이 그리 불편하여 이렇게도 나에게 적신호를 보내는 것이었을까.
결국 용하다는 테라피스트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선생님, 지금 제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저 왜 그럴까요."
라고 생각했던 나란 사람은 짧게 말하면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그중에서 관계의 수동성에 대해서 먼저 글을 써야겠다고 느낀 이유는 많은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해줄 때 관계에서의 수동적인 태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하는지 내가 테라피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보였기 때문이다.
테라피를 시작하고 내 인생사를 선생님과 읊으며 한바탕 눈물 파티를 끝낸 후,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어때요?"
드디어 자신 있는 종목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당당히 말했다.
"남자 친구가 저보다 나이가 많아서 보통 모든 결정을 믿고 따르는 편이에요."
사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안정감을 찾은 것은 사실이었고 연상을 만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라 전혀 문제 될 문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다시 되물으셨다. "그럼 많은 결정권이 남자 친구에게 있는 거네요?"
나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나를 지긋이 보시며 말하셨다.
"관계에서 수동적이면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단 한마디였지만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고 바로 무엇을 깨달았단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관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내 불안을 더욱 야기시키는 원인이었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고 자책도 했다. 생각해보면 주말에 언제 만날 지 무엇을 할지 그 어떤 결정에도 나는 그냥 "마음대로 해, 나는 상관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되니 목요일이 될 때까지 언제 만나자는 말이 없으면 '이번 주에는 못 만나나?' 혹은 '나한테 서운한 게 있었나?'라는 생각부터 '이 사람, 변한 건가?'라는 괜한 걱정이 시작될 때가 있었다.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좋아하는 건 같은데 왜 사귀자는 말이 없는 거야?"
"사귄 지가 꽤 됐는데 왜 결혼 얘기가 없는 거야?"
"몇 시간째 문자 답장을 안 해서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싸웠어."
결국 많은 고민들이 기다림에 지친 호소이다. 혹시 내가 많이 좋아하는 것이 들키고 자존심이 상할 까 상대방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고, 그 기다림 속에서 매일 불안한 것이다. 우리는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저 사람이 나를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곤 한다. 주어가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될 때가 허다하고 그렇게 되면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기다리며 불안해한다.
테라피가 끝난 후, '이번 주부터는 우리가 만나는 날과 시간은 내가 정한다.'라는 결심을 했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 금요일 일 끝나고 만나자."부터 시작했다. 남자 친구에게 몇 시간째 답장이 없을 때는 무작정 "지금 밀당하는 건가?"라고 뾰로통해하지 말고 전화를 걸어서 "뭐해?"라고 물어보면 먼저 답장을 못한 정당한 이유들을 말해주고 그럼 나는 이해하고 전화를 끊는다. 요즘 너무 집에만 있고 데이트를 안 했다 싶으면 "우리 요즘 왜 이렇게 데이트를 안 나가는 거야?"라고 불평하는 대신 "나 우리 자주 갔던 그 레스토랑에서 가고 싶으니까 우리 토요일에 거기로 브런치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하자고 상대방이 갑자기 '그래 다 너 마음대로 하자!'라고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의견을 절충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입장과 성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부수적인 장점도 있다.
밀당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필요한 정도의 밀당을 하면서도 기다림이 불안함과 서운함이 되려 할 때 내가 그 상황에 대해서 주체성을 가지고 나의 마음을 다스리자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능동적인 태도를 취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 경우 중에 하나가 상대방이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 아픈 현실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땐 "그 사람은 나를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아."라는 생각에서 주어를 나 자신으로 바꾸어 "나는 그 사람을 이 만큼이나 사랑해."라고 되뇌고 인정해보자. 그러면 내 마음 안에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 소중한 감정이 상대방은 어찌 느낄 것이라는 억울함과 불안함을 누르고 더 밝게 피어날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