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동료 리뷰 결과가 나왔다.
내 상위 리더가 전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사실 놀랍지 않았다. 그 리더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근무 시간에도 개인적인 일이나 사적인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략이나 데이터보다 본인의 편견과 감정에 따라 이뤄진다. 그 결과, 동료 리더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였다. 나는 이 결과를 보고 당연히 대표가 책임을 묻거나, 최소한 경각심을 주길 기대했다. “이번 기회에 변하겠구나”라는, 아주 작은 기대였다. 그런데 대표의 첫 반응은 전혀 예상과 달랐다. 그 리더에게 “괜찮다, 힘내라”는 응원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해왔다. 내 시간을 쪼개고, 머리를 쥐어짜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도맡아 했다. 그런데 낮은 점수를 받아도 응원받는 사람이 있고, 높은 성과를 내도 ‘조금 더 보자’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목격하니, 내가 왜 이렇게 달려왔는지 허무해졌다.
⸻
마침 이번에 나의 승진 심사가 있었다. 1.5년 전에 승진을 했었다. 그리고 1.5년 동안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아 1.5년 만에 다시 승진 후보자가 되었음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1.5년 동안 열심히 일한 시간이 있기에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승진 심사 세션이 끝났고, 결론은 떨어졌다.
근데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조심스럽게 귀띔해주었다. 나의 리더는 내 승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대표 역시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조금 더 보자”고 했다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내 성취로 스스로를 증명해온 사람이다. 상사의 적극적인 업무 지원이 없이도 결과를 내고, 조직의 목표에 맞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 ‘최선’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지 못했다. 나의 리더는 내가 열심히 한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고, 대표님은 나를 인정하면서도 한 발 물러서 있었다.
⸻
나는 존경할 수 있는 리더와 함께할 때 동기부여가 된다. 나보다 넓게 보는 시야, 더 멀리 내다보는 판단,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믿어주는 신뢰.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의 상위 리더를 존중하기 어렵고, 대표를 더 이상 존경하기 어렵다. 신뢰와 존경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허무함이 남았다. “열심히 일해도 소용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
동기란 결국 ‘이 일을 왜 하는가’에서 나온다.
그 이유가 ‘존경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면, 그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나도 흔들린다. 그 이유가 ‘공정한 보상과 인정’이었다면, 그 기준이 무너지는 순간 방향을 잃는다.
나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1.5년의 시간을 인정받지 못했다라는 실망감과 함께 대충 하자’는 마음과 ‘여기서 더는 기대하지 말고, 내가 존경할 수 있는 환경으로 옮기자’는 마음.
나는 전자를 택할 수 없다. 대충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적극적인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
아직 답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동기부여를 남에게만 기대하는 순간, 나는 무력해진다. 나를 잃지 않으려면, 내 기준과 원칙을 지키거나, 그 기준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존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나를 얼마나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배웠다.
앞으로 나는, 나를 바보처럼 느끼게 하는 자리에는 오래 머물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열심히 일하는 내가 바보 같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