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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09. 202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글쓰기는 나를 구원할 것인가, 망가뜨릴 것인가

내 무덤을 내가 팠지.

오늘도 깊은 한숨을 쉬고 노트북 앞에 앉아 나오지 않는 글을 뽑아내려 애쓰며 애꿎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 누구도 내게 글을 쓰라고 등 떠민 적 없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원고료를 주고 빨리 글을 써 달라고 독촉하는 곳도 없건만 무엇을 위해 이렇게 브런치에 글 한편을 올리려고 끙끙대는가.



어릴 적부터 취미가 독서였고 글 쓰며 사는 삶을 늘 동경했다. 누군가 꿈을 물어보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제 이름으로 책 내는 게 꿈이에요!


10대 소녀시절부터 40대 워킹맘이 되기까지 한 순간도 놓지 않은 '작가가 되겠다'는 꿈. 변하지 않은 그 꿈은 늘 소중히 간직만 했을 뿐, 꿈을 이루려고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 본 적은 없었다. 책을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단 한 번도 책을 내는 게 '목표'라고 말한 적이 없고, '꿈'이라는 단어로 한 꺼풀 보호막을 씌운 채 그 안에 꽁꽁 숨어만 있었다. 목표가 기한을 두고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라면, 꿈은 먼 미래의 언젠가에 한 번쯤 이루고픈 희망사항일 뿐이니까. 꿈은 이루어지면 기적이고,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나만의 아름다운 꿈으로 언제까지고 간직하면 되니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이란, 영원히 시들지 않게 보존 처리된 프리저브드 플라워 같은 것이었다. 굳이 애를 써서 물을 주고 이파리를 닦아주며 가꾸지 않아도, 꿈은 꿈인 채로 그저 아름답게 내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에서 글쓰기를 위한 플랫폼 '브런치'를 론칭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초보 워킹맘으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있던 중이었다. 더 시간이 많던 시절에도 글을 적극적으로 쓴 적이 없던 사람이 왜 하필 그때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린 아기를 돌보 풀타임 직장인의 생활은 하루를 분 초 단위로 쪼개어 몸과 영혼을 갈아내야 유지되는 것이었고, 매일 조금씩 소모되며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 끝까지 갔다가도 아이의 까르르 웃음 한 번에 온 마음이 행복하게 녹아내리는 종잡을 수 없는 삶이었다. 행복과 좌절, 피로와 보람 등의 감정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최대치로 동시에 몰아닥치는 혼란한 삶을 사는 와중에, 왜 새삼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처음 겪어보는 온갖 감정의 하모니가 '이제는 글을 쓸 때가 되었다'라고 악마의 속삭임을 보낸 것일지도.



글을 쓰라고 유혹하는 악마와 손을 잡은 후 워킹맘이자 살림에는 젬병인 일상을 소재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한 방에 합격한 나는 (사실 예상은 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작가 되는 게 이렇게 쉬웠어?


책 한 줄 쓰지 않은 내가 작가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작가 되는 꿈을 단번에(?) 이뤄버린 나는 곧 자만심에 빠져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 출판사에서 연락받지 않을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때마침 브런치에서는 책 출간의 기회가 주어지는 공모전을 열었다. 내 멋대로 이건 운명이라며 자신 있게 매거진을 만들고 글들을 신나게 발행했다. 왜 남편은 하필 이때만 그렇게 팔불출로 굴었는지. 글을 읽어보더니 책으로 나올 것 같다고, 뽑힐 것 같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한껏 추켜세워 나를 저 높은 구름 위까지 올려놓았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날개를 고정한 밀랍이 녹아 추락할 거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껏 날아올랐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카루스처럼, 나는 근거 없는 희망이라는 날개를 달고 멀게만 보였던 책 출간이라는 세계로 한껏 솟아올랐다. 태양빛에 밀랍이 녹아 추락해 죽음을 맞은 이카루스처럼, 나 역시 낙방이라는 불꽃을 맞고 한없는 절망 속으로 떨어져 잠시 만끽했던 작가로서의 삶에 작별을 고했다. 마음대로 혼자 들떴다가 좌절한 나는 다시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를 뽑아주지 않은 브런치에게 할 수 있는 복수는 브런치 앱을 삭제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내 마음대로 브런치와 사랑에 빠졌다가 버림받았다고 원망하고 돌아서버린 지 7년이 지난 2023년 가을, 이은경 작가님이 진행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애증의 이름 브런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함께다. 7년 전에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내 글의 부족한 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는 전문가가 있다. 과거에는 다른 이의 글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함께 달리는 동료들의 글을 찬찬히 읽으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시작도 제대로 안 했다가 절필부터 한 무늬만 브런치 작가는 함께하는 이들의 힘으로 글 쓰는 기쁨을 다시 찾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생각을 정리하고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외면해 버렸던 꿈을 다시 찾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라고 글을 끝맺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삶은 엉망진창으로 피폐해졌다.


글쓰기라는 괴물이 온 하루를 집어삼킨 것 같다. 출근길 지하철에 멍하니 앉아있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찰나 떠오른 글감을 놓칠세라 허둥대며 휴대폰으로 메모를 남기느라 바쁘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입은 외투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고, 놓쳐버린 버스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다가도 글감이 떠올라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는 작가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게 된 건가 뿌듯해하는 것도 잠시, 도대체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옷장에 옷들이 빽빽이 걸려 있어도 정작 입을만한 옷은 항상 없는 것처럼, 일상 속에 글감은 넘쳐나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앉아있다 보면 점점 초조해지며 미친 듯이 후회가 몰려온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글을 쓰기로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쓸 게 없다고 괴로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브런치 작가로 '다시' 살겠다고 도전하지 않았으면 내가 쓴 글의 조회 수와 댓글 수를 확인하며 마음 졸이고 앱을 하루에도 몇십 번이고 들락날락하는 일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밤의 냉기가 스멀스멀 스며드는 거실 식탁에 앉아 안 나오는 글을 짜내려 애쓰는 대신, 포근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아이가 잠든 후 맥주 한 캔을 경쾌하게 따서 넷플릭스를 켜는 안온한 인생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맥주를 따다가도 글감이 떠올라 메모지부터 찾게 될 거고, 스스로 정한 마감일이 다가오면 맘 편히 드라마 한 편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깜박이는 커서와 눈싸움을 할 것이고, 마음속 깊숙한 창고 어딘가에 멋진 글귀가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손전등도 없이 글창고를 뒤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타닥타닥 키보드 치는 손에 속도가 붙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문장들이 마법처럼 흘러나오는 경이로운 순간을 계속 경험하고 싶어서. 저장만 몇 십 번을 했다가 마침내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뿌듯함을 잊지 못해서. 오늘도, 내일도, 나는 쓰고 또 쓰게 되겠지.


그리하여 보잘것없는 내 삶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만큼이나 건조한 누군가의 삶에 물 한 방울 뿌리기 위하여. 뿌리고 뿌리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속으로 내가 쓴 문장들이 촉촉하게 스며드는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 이미지 출처

제목 : 다음영화 <아가씨> 스틸컷

본문 : Unsplash / Becca McHaf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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