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태도
이 책은 KBS <다큐3일>, tvN <유퀴즈>의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해온 저자가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운 좋은 태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로그램 특성상 그가 만나서 취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개 정 많은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여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오래도록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봐주며 배웅한 할머니의 이야기라든가, 할아버지가 114에 전화를 걸어 보일러 기름 넣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안내해드렸다는 상담사의 이야기라든가...'세상엔 왜 이리 또라이들이 많을까' 생각하게 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는 평소에 들어볼 수 없는 따뜻한 사연들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경험을 통해 저자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인생을 사는 좋은 태도를 갖게 된게 보여서 저자가 참 부럽기도 했다.
인생을 사는 좋은 태도라는 게 어떻게 보면 모두가 아는 뻔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뻔한 메세지도 실제 이야기와 곁들으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특히 한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하버드대학에 입학하고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cfa 자격증을 딴 남자의 사연을 읽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었다.
또 저자는 모든 걸 직접 보고 들은 사람으로써, 사람들의 말과 모습에 대한 묘사를 아주 디테일하게 풀어낸 점도 인상적이었다. 배달원들이 노크를 많이 하다보니 장갑에 구멍이 나있었다든가, 시골 의사가 어르신들 왕진을 가면 어르신들은 일부러 커피를 처음에 내놓지 않고 의사가 떠나려 할 때 커피를 줌으로써 더 머물게 한다든가. 그런 소소한 묘사들이 따뜻한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 책엔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그 누구든지 이 책을 읽으면 본인도 모르게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이나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름 나 정도면 괜찮은 태도를 갖고 있지 않나 자부했던 나도, 이 책을 통해 많은 부분을 반성하고 배울 수 있었다. 작가 역시 본인이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지 솔직히 밝히며 누군가를 통해 그 관점을 깼다고 고백한다. 예를 들어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슬픔'의 감정으로만 바라보진 않았나 하고 말이다.
"그들에게 굳은살은 아픔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훈장이고, 일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좋다고 한다. 왜 나는 그동안 굳은 살이 아픔이고 슬픔이라고만 생각했을까. 굳은살이야말로 그동안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인데 말이다"
또 나의 편견을 인지하고 깨뜨려 준 부분은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1세대 여성학자 박혜란 교수님의 이야기였다. 돌아보니 나는 여자임에도, 직장에서 마주하는 워킹맘들 중 미혼인 나보다도 훨씬 저녁 약속이 많은 분들을 보면서 살짝 갸우뚱했었다. 가정주부로써 종일 집에서 날 보살펴주셨던 내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의 글을 보고 내 생각만이 정답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됐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엄마 노릇은 여러모로 내 능력을 뛰어넘는 것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로의 엄마 노릇을 하기로 했고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난 엄마답게 살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나답게 살았던 것뿐이었다...나는 맘먹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냥 나답게 살기로. 그러자 나이 듦의 무게가 한결 줄어들었다. 사는 게 그럴 수 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
문득 근대 신여성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의 말이 떠오른다. "남편의 아내이기 전에, 내 자식의 어머니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
박혜란 작가는 말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기보다 자신이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전업주부의 삶이 편하다면 그렇게, 일하는 게 좋다면 일을 하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아이는 저절로 잘 자라게 될 것이라고"
이 책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글의 구성이 동일해서 다소 루즈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글 한편마다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의 사연 두어개, 그와 관련된 시나 명언구절 혹은 드라마 장면 등 두어개를 섞어서 본인이 어떤 점을 배우고 느꼈는지 담겨 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이 책을 한번에 쭉 몰입해서 읽기보단 다른 책들을 읽다가 쉬고 싶을 때 틈틈히 보는 식으로 읽었다. 그래도 나 역시 그 구성이 최선의 구성일 거라고 생각하고, 또 여러 이야기들을 엮어서 하나의 주제를 뽑아낸다는 건 그만큼 작가가 많은 인풋을 쌓고 정리해왔다는 것이므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또 루즈하게 느낀 포인트가 어쩌면 모든 이야기들이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따뜻함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고 강점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결과적으로 독자 입장에선 그렇게 느끼게 된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 MBTI 'NF'인 사람으로서 이렇게 감성적이고 선한 이야기를 참 환영하지만, 'ST'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그들에겐 너무 이상적으로 들리진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안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데, 아마 이미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이 책을 더 찾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을텐데, 그런 내 바람도 너무 이상적이겠지. 또 나는 유퀴즈 애청자로서, 유퀴즈 출연자들의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고 참 반가웠기에, 유퀴즈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이나 환경이 주변에 있다면, 그래서 사람이 싫어졌다면, 아니면 내가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보다 나은 태도를 갖추고 싶다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색다른 영감을 얻고 싶다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차갑게 굳어있는 마음에 이 책이 따뜻한 온기를 가져다줄 것이다. 마음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