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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라비다바다 Oct 20. 2023

에세이같은 거 뭐하러 읽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독서 유튜버이자 라디오DJ 김겨울님이 추천한 책이라고 하여 이 책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을 계기로  내가 최근에 푹 빠지게 된 작가 '정지우'의 이름이 적혀 있어 더욱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놀랍게도 사실 나는 그동안 에세이 장르의 책을 읽어봤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에세이를 쓸 데 없는 것이라고 취급해왔었기 때문이다. 정치경제 분야 전공자로서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세상 사는데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고,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스토리라인이 엄청난 몰입감을 일으키며 또 그것이 내게 창의력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세이는 그저 누군가가 써놓은 일기 정도의 글일테고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 당연한 교훈 정도 담겨있을텐데 내 소중한 시간을 내면서까지 읽을만한 내용인지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제대로 한 권 읽어보지도 않고 왜 그런 편견을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무지하고 또 거만했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특이했던 경험을 자랑하듯이 마구 나열하고 글이 끝나다니, '해당 주제에 대해 도통 할 말이 없는데 어쩔 수 없다'고만 하며 글이 끝나다니! 이런 것도 책으로 내도 되는걸까? 아니, 책을 내기 전에 앞서 글쓰기 모임에 이런 글을 들고 가면 엄청 쓴 소리를 들을텐데? 생각했다. 그렇게 다소 날카로운 관점에서 고개를 갸우뚱 하며 읽었던 이유는 내가 언시생으로서 작문 스터디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당 스터디를 할 적에, 이 책의 구성 방식과 동일하게 키워드 하나를 정한 후 그에 관해 스터디원들 각자 에세이 혹은 단편 소설을 쓰고 돌려 읽으며 엄격하게 또 디테일하게 평가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이 꽤나 즐거웠다. PD가 되고 싶어 준비를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스터디 자체를 즐기게 됐는데, 운좋게 우수한 스터디원들을 만난 덕에 매주 입밖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글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통찰을 가졌으며 또 어떻게 이리 창의적으로 풀어냈을까, 어떻게 이리 아름다운 문장을 써냈을까, 매번 놀라웠다. 또 그렇게 대단한 스터디원들이 내가 쓴 글을 보고 감탄해주는 날엔, 잠들기 직전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함이 컸다. 실제로 그들 대다수는 시험 한두번 만에 메이저 방송사의 PD로 바로 합격했고, 여튼 그런 경험을 한 내게 '완성된 글 한편'이란 엄청난 글쟁이들에게 보여줘도 꿀리지 않고 그들로부터 감탄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예술작품과 같은 것이었던 거다.  


어쩌면 내가 글에 대한 기준을 이렇게 높게 잡은 탓에, 나 스스로 하여금 글이란 걸 함부로 못읽고 못쓰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럽게 손질되고 가식적으로 포장됐다기보단, 다소 무심하고 담백하고 또 거칠어보이는 글들을 보면서, '글을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겠구나' 느꼈다. 또 그런 글들 속에서 작가들의 내면이 훤히 드러나면 오히려 좋았다. 작가들은 본인의 못난 이야기마저도 참으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 작가가 이렇게 편협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고?' 라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또 그런 본인의 모습이 참으로 못났었다고 인정하는 작가의 솔직함에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나의 표정은 다시 인자해졌다. 그런 솔직한 태도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런 게 진정한 에세이임을 느꼈다. 정지우 작가가 말했었던 본인에 대해 일절 포장하지 않고 본인의 모습 있는 그대로 솔직히 쓰는 글이란 게 바로 이런 글이고, 또 그게 독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인단 걸 실감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그 포인트는 바로 '공감'이었다. 예를 들어, 나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정지우 작가가 본인이 바다를 왜 좋아하는지 묘사한 부분을 보면서, 바다에 대해 형용할 수 없던 내 감정을 뚜렷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어릴 적엔 친구들의 나이가 모두 같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사귀게 된 친구는 나이보다는 내가 속하게 된 영역과 관련이 있다'는 글을 보며, 내가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투명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또래가 아닌 10살 많은 직원인 게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 또 한때 단둘이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친했던 친구와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멀어져 씁쓸해하던 내게 아래 문장은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란 그저 매 시절 유행했던 대중가요 같은 거라는 사실을. 유행할 때는 질리도록 듣고 흥얼거리고 떼 지어 부르다가도 유행이 바뀌면 시들어 버리는 그런 오래 들은 카세트테이프처럼 느슨해지는 그런, 세월이 흐른 후에 소주 한 잔 들어가면 이따금 생각나는 게 전부인 그런."

"가족의 아픈 비밀을 공유했던 친구도, 나한테 돈을 꾸러 오던 친구도, 생애 첫 여행을 함께했던 친구도, 연기처럼 날아갔다. 내가 버린 건지 버림받은 건지 모르겠다. 떠난 쪽인지 남겨진 쪽인지 알 수 없다. 안녕이라는 말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서로 적이 되지도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 서서히 잊혔다"

                                                                         이은정의 <한때 나의 친구였던 소녀들아> 中


그리고 글에서 내가 생각지 못했던 통찰을 얻었을 때 큰 기쁨을 느꼈다. 특히 주어진 키워드와 관련된 작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 그것이 점점 어떠한 통찰로 이어지는 글을 볼 때 쾌감을 느꼈다. 예를 들어, 키워드가 '비'일때 '비가 오는 날이면 본인은 어릴 적 우산쓰고 데려오는 어른이 없었더라도 그 시간을 신나고 뿌듯하게 보냈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가 그런 아이들을 불쌍하게 비추고, 또 아빠도 아닌 엄마 탓만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메세지를 주는 김혼비 작가의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또 같은 키워드인 '비'를 주제로 정지우 작가가 쓴 글도 내게 감명을 주었다. 

"삶이란 아마도 그렇게 어떤 날씨들과 함께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무엇이 아닐까 싶다. 삶이라는 것에 그 외의 대단히 이루어야만 하고 도달해야만 하는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비 오는 오늘, 혹은 약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맑은 어느 봄날, 추운 겨울 찬바람을 피해 황급히 들어갔던 어느 따뜻한 설렁탕집, 에어컨 아래에서 수박을 잘라 먹던 어떤 어제만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나가고, 또 그와 같은 날에 다시 기억으로 돌아오고, 그리워하고, 또 다른 그리움을 쌓아 나가고, 살아 내는 일이 삶 내 이어지고 반복되는 것 외에 삶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아마 삶은 그 바깥에는 없을 것이다."
                                                                                     정지우의 <비가 불러오는 날들> 中 


또 나는 평소 글을 읽을 때 색다르고 아름다운 문장을 마주하길 기대하고 또 발견하면 수집하는데, 이 에세이에서도 작가들의 다채로운 문장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벚꽃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개의 봄꽃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가득 달콤한 설렘을 안겨 준다면, 그 중에서도 벚꽃은 유독 아스라하게 달콤하고 아스라하게 설렌다. 지금 꽃을 보며 느끼는 이 황홀이 저 머나먼 과거 어딘가에서 떠내려온 것만 같고, 달콤하고 설레는 감정의 테두리에 늘 적적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김혼비의 <뿌팟퐁커리의 기쁨과 슬픔> 中


한편 개인적으로 책에 수록된 일곱가지 키워드들 중 '작가' 키워드가 제일 궁금했었다. '작가'라는 것에 대해 작가들은 뭐라고 쓸까? 이에 대해 김혼비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쓴 내용이 인상적이었기에 남겨본다. 또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김도 아닌,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아닌,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김혼비의 <마트에서 비로소> 中


그동안 '에세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읽어보지 않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본 에세이집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에세이란 무엇인지, 또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들이 쓴 글을 보며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면을 솔직하고 또 섬세하게 드러내는 내용,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포인트, 우리네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을 담은 주제, 아름다운 문장력...그 모든 것을 갖춘 글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 책의 목차를 쭈욱 훑어보며 각각의 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외에도 인상적인 부분이 참 많았었다. 글에 대한 기억들이 잊힐 때쯤 이 글들을 다시 읽어서, 처음 읽었을 때의 감명을 또 다시 느끼고 싶다. 또 동일한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내가 김혼비 작가와 정지우 작가의 글을 유독 좋아한단 걸 알았기에, 그들의 글을 더 찾아볼 예정이다. 무척 설레는 마음이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맛보며 좋아하는 작가 한두명을 마음에 품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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