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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Jan 02. 2024

난생처음 타월을 사 보았다.

수건에 새겨진 이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새해가 되었다.

올해 나의 첫 대형 소비는 집에 있는 수건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송월타월 직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수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수건 20장을 샀다. 너무 뿌듯한 순간이었다. 다 들고 올 수가 없어서 배송을 시켰기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욕실에 뽀송한 새 수건이 걸려있는 것을 상상하니 저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마음 한편에 있던 수건에 새겨진 사람들과 기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사그라 든다. 이런 소비는 기분이 좋아진다. 소비의 철학을 정립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나는 물건에 대한 지겨움이 없는 편이다. 특히, 공산품들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까지 계속 사용한다. 우리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는 내가 처음 독립했을 때 샀던 것인데 26년째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약간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데우기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언젠가 우리 집 빨간색 전자레인지가 너무 낡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바꾸려고 생각해 본 적도 있었고 당근에서 버려지는 것을 가져올까? 사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빨간색 전자레인지가 너무 귀엽고 정이 들어서 차마 바꾸지 못했다. 아직도 쌩쌩하게 잘 돌아가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24년간 우리 집을 청소했던 줄 달린 청소기는 얼마 전에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 청소용으로 기증하였다. 그 청소기도 모터가 아주 멀쩡해서 잘 가동되지만 고양이들이 집에 식구가 되면서 캣타워가 생기고 가구들에 이 끌리는 것이 불편해서 기증을 했다. 집안을 어지럽히는 고양이 털 말고는 크게 청소할 것이 없어서 조그마한 핸디 청소기와 부직포, 물걸레 밀대를 이용해서 청소를 하고 있다.


그 청소기도 빨간색이었는데 떠나보내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요즘 유행하는 그 멋들어진 무선청소기 다이쑝, 코드열, 로봇이 등등이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해서 하나 사볼까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벌써 5년째 생각만 하고 있다. 아마도 사지 않을 것 같다. 친구네 집에서 멋진 청소기를 한번 사용해 보았는데 너무 무거웠다. 나에게는 밀대가 딱이다.

 

헤어드라이기도 한 20년은 넘게 쓴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머리카락이 반곱슬이라서 드라이기 잘못 쓰면 달려라 하니 머리처럼 자유롭게 하늘로 뻗치는 바람에 헤어드라이기에 욕심을 내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연예인들이  고하는 고가의 드라이기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지만 뜨거운 바람, 차가운 바람 잘 나오는 우리 집 드라이기를 차마 쓰레기통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이 실감 나고 있다. 대학 다닐 때 유행하던 옷들이 요즈음 많이 유행하고 있다. 대학 때 일 년 동안 용돈을 모아서 큰맘 먹고 샀던 리바이스 골드탭 에디션 통 넓은 힙합바지와 실버탭 와이드 핏 청바지를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한동안 옷장 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요즘 유행과 딱 맞아서 딸이 수시로 빌려서 입고 있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주신 정장도 대대로 물려주어 딸이 복고풍 기분 낼 때 입고 외출하기도 한다.


물건은 기능을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기에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다. 똑같은 물건을 여러 개 가지는 것도 굳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물건 사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사고, 가능한 오래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한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 쇼핑을 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정확하게 구매하고 싶은 브랜드와 색깔, 적정 가격대를 결정해 두고 매장에 들어가서 쑈가 골라서 나오게 되었다. 매장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간이 아깝다. 아주 공을 많이 들이는 품목은 신발이다. 신발은 건강관리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품목이기에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의 것이 아닌 가족의 물건을 살 때는 충분히 시간을 쓰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서핑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은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일이다.


물건에 대한 나의 기본 입장과 쇼핑 패턴을 기준으로 볼 때수건을 구매하는 건 대체 어느 시점이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세탁을 하면 다시 깨끗해지고, 색이 바래기는 하지만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버리기도 애매하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해마다  '000 기념'이라고 새겨진 수건들이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색이 아주 많이 바랜 것들은 버렸었다. 창립기념, 돌기념, 결혼기념, 팔순기념 등등 세월이 지나도 수건에 글씨 새겨서 맞추어서 나누어 주는 풍습은 변하지 않는 것인지 타월이 점점 고급스러워지고 스포츠타월부터 대형 목욕타월까지 스타일도 다양하게 나오니까 그런 수건들이 하나둘씩 모여서 수십 개가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기념 수건을 쓰다 보니 그런 수건들에 익숙해지고 내가 지갑을 열어 구매하지 않아도 되니까 수건이라는 물건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안 쓰고 살아왔다.


어느 날 '000의 돌잔치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새겨진 수건으로 몸을 닦고 발을 닦고 바닥에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데 000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수건을 받았을 때 '이름은 새기지 말지'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꼬맹이가 이제 제법 걸어 다닐 나이가 되었을 텐데 그 이름을 밟고 있는 것이 엄청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수건을 욕실에서 치웠다.


마음먹고 수건들을 다 확인해 보니 사람 이름, 기관 이름이 쓰인 수건이 제법 많았다. 세탁한 공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사용하고 그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름이 새겨진 것을 치우다 보니  어느새 수건이 몇 장 남지 않게 되었고, 수건을 사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 번도 수건을 구매해 본 적이 없으니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수건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터라 수건이 얼마나 다양한지도 모르겠고 그저 한 가지 아는 사실은 수건은 송월타월이 제일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송월타월 직매장을 찾아가서 30분 넘게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신기한 타월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요즘은 면 100% 재질은 흡수력이 오히려 좋지 않아서 잘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 섬유와 면섬유를 섞은 것을 많이 사용하는데 30 수냐 40수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지만 개인별로 취향이 있으니 무조건 비싼 타월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여러 개를 구매해서 써 보고 딱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그 제품을 많이 사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타월의 세계를 알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종류를 확인했으니 다음부터는 주기적으로 같은 종류의 타월을 구매하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구 이름이 적힌 타월은 받아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기분 좋은 2024년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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