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잘 교육하겠습니다.
눈망울이 크고 얼굴이 하얗고, 체구도 자그마한 어머니는 아들의 동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하다고 빌고 있다.
금액 이상 없는지 확인하고 이번 일로 더 이상 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하면 사인하고 나가면 된다.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무려 100만 원이다. 어머니는 만 원권을 100장 뽑아와 봉투에 넣어서 한 명 한 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90도로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인사를 하고 있다. 이런 중에도 홍이 녀석은 눈빛을 감추며 멍하니 눈을 내리깔고 서 있다. 머리통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엄마가 자식 대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데 내가 무슨 오지랖이야 하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행보관은 휴가나 외박 다녀오면 만원 정도만 가지고 있고 큰돈은 행보관한테 맡기라고 그렇게 교육을 했는데 괜히 돈을 가지고 있어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도둑맞은 병사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 옛말에 견물생심이라고 아쉬운 사람이 돈 보면 갖고 싶지 안 갖고 싶겠냐고, 당연히 천만 원이라도 내 돈 아니면 돌처럼 보는 게 맞지만 그게 사람이 다 내 맘 같지 않으니까 훔친 녀석도 도둑맞은 녀석도 다 잘못한 거라고 앞으로는 무조건 지갑 검사해서 딱 만원만 소지하게 할 거라고 다짐을 하고 있다.
소대장은 처음 도둑맞았을 때 바로 이야기했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을 텐데 처음 없어졌을 때 바로 신고를 안 하고 일을 키운 거라고 분대장들을 불러다가 닦달을 했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지 처음 발생했을 때 바로 보고하라고 신신당부 교육을 시키고 있다.
나는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부대와 개인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잘 정히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요즘은 모두 카드를 쓰니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없고 또 몇 년 전 같으면 고소를 당했을 수도 있다. 곳곳에 CCTV가 있으니 감히 이런 일을 꾸밀 엄두도 못 낸다.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고 돈은 없고, 욕구를 참을 수는 없었던 홍이의 치밀한 계획 속에 우리 모두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도둑질 행각.....
생활관에서 지갑 속의 돈이 없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부대 안에서 누가 뭘 훔쳐 가는 걸 생각도 안 했던 시절이다. 돈을 던져놓고 다녀도 아무도 집어가지 않는데 지갑에서 만원, 이만 원씩 없어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지갑이 통째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간부들이 알게 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하니까 자기들끼리 추리를 시작했다. 결론은 누군가 휴가나 외박을 다녀오면 그 친구의 지갑 속에서 돈이 티 안 나게 사라지고, 또 가정형편이 좀 좋아서 브랜드가 있는 지갑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만 골라서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가 휴가 다녀와서 일부러 용돈 많이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전 중대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느니 하면서 시끄럽게 군 후에 취침시간이 되자 모두들 침상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척을 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문이 끼익 열리면서 들어와서 그 친구의 관물대를 뒤져서 손에 지갑을 들고 있는 현장을 덮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그 작전을 주도한 선임병에게 이끌려 왔다. 사건의 전말을 다 들은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평소에 너무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도 없이 자기 일을 잘해 오던 친구였는데 밖에서 모델 일을 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다 왔다고 했고, 집안형편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홍이는 울면서 절대로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이번 단 한 번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 맞지만 나머지는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CCTV도 없고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걸 증명해 낼까?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진짜 도둑을 찾기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전 병력들에게 설문을 했고, 잃어버린 돈과 지갑을 조사했다. 일단 접수된 것만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어휴... 거기다 몽블랑 지갑까지... 솔직히 다른 곳에서 잃어버리고 이 참에 홍이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일 수도 있고, 증거가 없는 이야기를 믿고 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갈 수도 없었다. 우리 병사들은 분명 홍이일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함부로 홍이를 도둑으로 몰아세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후에 돈을 잃어 벼렸다는 병사들의 출타기록과 경계근무 기록, 홍이의 출타기록, 홍이의 페이스 북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돈을 잃어버린 친구가 복귀하는 날마다 홍이는 가장 취약한 2시-4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시간대에 근무가 편성된 병사들에게 자신이 근무를 바꾸어 줄 테니 몸이 아파서 근무 서기 힘들다고 행보관에게 보고를 하라고 하고 근무를 대신 선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내에 꼭 외출, 외박을 나갔다. 페이스 북에는 놀면서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사건은 퍼즐이 맞춰지듯이 하나둘씩 조각을 찾아갔고 집요한 조사 끝에 더 이상 발뺌을 할 수 없었던 홍이의 자백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돈이야 되돌려주면 끝이 나겠지만 잃어버린 지갑들을 회수하기 위해 12개나 되는 생활관의 바닥을 다 드러내는 대 수색작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침대가 아닌 침상으로 만들어진 예전의 생활관은 좌우전면을 벽돌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12밀리 두꺼운 합판을 얹고 장판을 깔아 둔 형태였다. 홍이는 훔친 지갑을 그 바닥 속으로 던져 넣었다고 했다. 어디에 던졌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망할 기억력.. 일을 최소화하려고 닦달을 했지만 훔치고 은닉하는 순간에 그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 어디에 던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맞기도 할 것 같다.
생활관 10개의 바닥을 뜯어내고 다시 침상을 깔고 장판을 까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일과 중에 일을 마치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어야 했다. 진짜 욕이 절로 나왔다. 차라리 땅을 파고 묻었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하루에 2개 생활관씩 작업을 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기에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전 부대원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침상 바닥은 10개의 지갑과 함께 뜻밖의 물건들을 내놓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들여져서 몰래 부대로 들여오고 어느 밤 병사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을 소주병들이 100개도 넘게 나왔다. 천만 다행히도 먼지를 그득히 뒤집어써서 족히 5년은 넘게 묵었을 것 같은 녀석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심 싱싱한 소주병 몇 개가 발견되면 화난 참에 단체 뺑뻉이를 돌려야지 결심하고 있었지만 침상 바닥이 유리병까지 다 갈아 마셔버렸는지 싱싱한 병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 홍이는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을까? 결론은 아니다. 마음 넓은 동료들의 이해로 사소한 징계를 받는 것으로 벌을 대신한 홍이는 또 다른 대형 사건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치고 결국은 다른 부대로 보내어졌다. 믿음을 배신으로 되갚는 그 친구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우리는 남이니까 욕 한마디로 끝날 수 있겠지만 아들 또래의 아이들에게 수십번 머리를 조아린 어머니의 믿음을 또 져버린 홍이를 나는 아직도 용서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