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던 여행이 끝나고 지금 다시 일상으로 바쁘게 되돌아오고 있다. 일주일의 공백이 낳은 백여 통의 메일을 읽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집에 와서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번 여행기도 글로 남겨달라는 애독자의 말에 이런 뭐 세계여행도 아니고 오지 탐험도 아니고 동남아시아 잠시 다녀온 걸로 여행기록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지 않아?라고 받아쳤지만 여행은 견학이 아니므로 같은 장소에서도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고 느끼고 말하는 마법 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주 짧은 여행일기 237을 쓰고 있다.
밥벌이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와서 여행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서 4박 5일 동안 여행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길게 오랜 시간을 여행을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전 너무나 바쁜 회사일들을 다 해소하느라 매일매일 정신없이 보내느라 여행 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도 않았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나를 위한 휴식, 딸과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고 그것만 충족되면 그 어떤 것들도 중요하지 않았다. 먼저 방콕에 가 있었던 딸을 만나서 일주일간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뭐 검색이라도 해 보고 갔어야 하는데 진짜 깜깜이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늘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의해 분, 초 단위로 움직이는데 길들여져 있어서 집에서도 그냥 축 늘어져 있는 것을 잘 못하고 또 시간계획이 빗나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행 가는 그날 아침에서야 짐을 꾸리고, 여행 가는 나라에 대한 기본 정보도 검색하지 않았다. 그 흔한 블로그 후기도 한번 찾아보지 않았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갈아입을 옷과 수영복, 환전한 돈, 여권만 챙겨서 출발했다. 심지어 로밍도 하지 않았다.
익스큐즈미(excuse me)
땡큐(thank you)
쿠즈유?(could you?)
그리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신체언어 그중에서도 눈빛
4개의 무기만 있으면 영어가 통하는 나라에서는 밥벌이 말고 즐기면서 살아가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분명히 정규 영어교육을 받고, 나름 외국사람들과 일도 해 보고, 야! 너도 할 수 있어! 이것도 조금씩 하고 있지만 그저 목적이 여행인 사람에게 그리 긴 문장들은 필요치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태국어와 제법 알아듣기는 하지만 들리는 만큼 내뱉지는 못하는 영어, 의외로 많이 들렸던 아랍어와 중국어, 가끔 들리던 불어와 스페인어 다양한 언어들 속에 8일 동안 살다 보니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음엔 최소한의 계획은 세우고 최소한의 공부는 하고 여행을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