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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내춤 Mar 04. 2024

"구토"

작품 '구토'에서의 춤을 기억하며

<구토> 미나유 안무, 2017년과 2019년 국민대학교 대극장에서 공연


 구토 작품에서 나의 역할은 계속해서 뛰는 사람이었다.  일정한 동선을 따라서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무용수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무대에는 홀로 등장한다. 혼자서 퍼포밍을 하고 릴레이로 다음 사람이 등장하여 춤을 춘다. 그렇게 30분이 지나간다. 수행의 단계에는 4단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알아챌 듯 말 듯, 두 번째에는 좀 더 드러나게, 세 번째에는 정말 잘, 네 번째에는 미친. 각자 기계적, 쉐이킹, 팔, 리듬, 점프, 턴, 미끄러짐 그 자체가 되어간다. 점차 생각은 사라지고 몸과 음악, 그 순간만이 남는다.


 춤을 추는 동안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나 자신이기도 하고 무대 위에 남겨지는 환영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기록으로 남겨놓으려는 시도를 하여도 수행되는 순간, 발화되어 사라진다. 무대에서는 사라지고 관객의 의식 속에 남는다. 어쩌면 무용수는 내가 춤추는 공간 이외에 보는 이의 의식공간에서 춤을 춘다. 무대에서 사라진 나의 춤은 곧 나의 춤이 아니게 된다.


 재공연이 많지 않은 무용 공연 상황에서 재공연을 했던 그리고 올해 한 번 더 하게 될 구토 공연은 나 자신의 시간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첫 공연 때에는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어야 했었다. 피로골절이 올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미친 4단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바닥으로 무대 바닥을 밀어냈다. 2년 뒤 두 번째 공연에서는 여러 의미로 능숙해졌다. 움직임 수업과 트레이닝을 받으며 없었던 힘들과 근육이 생겨났고 사는 환경이 달라졌고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공연 스케줄도 하루 두 번이었던 것이 하루 한 번씩 이틀로 변경되면서 하루 하루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과연 올해 세 번째 공연에서는 무엇이 나를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지금은 처음 공연 때 와도 다르고 재공연 때와도 다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요령이 생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왠지 감각은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설레임이 있다. 나 혼자만 무대에 남겨졌을 때 오로지 춤과 나만이 남게 되는 순간에 오는 긴장감과 설레임 나의 몸을 점검하는 듯한 시간들과 실제 공연처럼 진행되는 연습시간. 그 끝에 남게 될 파편들을 찾기 위해서 나의 몸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 다른 방향으로 미치더라도 조금은 더 다다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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