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시작하는 순간
객석에 관객들이 들어오고 안내방송이 나온 뒤 조명은 점점 암전 된다.
무대에서 혹은 백스테이지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이 곳에 있는게 맞는지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감각이 예리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오롯이 존재한다는 기분.
연습해 온 동작을 틀리진 않을지 혹은 다른 무용수와 합이 맞지 않을까봐 불안하다는 느낌보다는
나의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동시에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평소에 춤을 추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공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이다.
곧 공연이 시작되면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시작큐가 들어오고 몸에 한 부위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 연결이 되고 이어져 간다.
나는 현대무용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먼저 무대를 경험했다.
그것도 꽤 큰 무대였다. 역삼동에 있었던 LG아트센터가 첫 무용 공연의 무대였다.
작은 공연들, 연극 공연도 해본적이 있고 소소한 발표회도 경험한 적이 있었지만
규격에 맞춘 무대에서 관객들 앞에서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과 호흡하는 순간은 처음이었는데
순식간에 그 시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공허함만을 가진 채 1년이 흘러갔다.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 몸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공연을 하고 난 후 한동안 나의 몸은 계속 그 곳에 남아 있다.
공연을 시작하는 순간 나의 몸은 머무르기 시작한다.
나도 아니고 타자도 아닌 그 순간만을 춤추는 사람이 있다.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 없는 머무르는 몸.
지금을 살아가는 몸.
나에겐 여러 개의 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