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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sun AN Jun 20. 2019

변치 않는 다름 이어가는 노포

을지로 오비베어 인터뷰 

을지로는 활기가 넘친다. 오랜 시간 자리 잡아 온 크고 작은 인쇄소와 각종 건축자재 상점들이 골목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서울 중앙에 위치해 대형 빌딩과 대기업 오피스들도 많다. 을지로 거리를 걷다보면 건축 현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들부터 각종 인쇄물을 운반하는 오토바이와 작은 트럭 차량, 정장 차림의 오피스 워커들이 모두 섞여 바쁘게 걷는다. 각기 다른 다양한 모습이지만 직업전선 속에 있는 생동이 느껴진다. 

을지로 OB베어가 문을 열었던 1980년, 골목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활력 있는 골목의 분위기는 지금과 비슷했다. 노가리 맥주 골목으로 유명한 을지로 3가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맥주집인 OB베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쁜 하루를 보낸 이들의 작은 아지트가 되어 주고 있다.      

OB베어 창업주인 강효근씨는 을지OB베어를 문을 연 후 30년간 쉬는 날 없이 맥주집을 운영해왔다. 맥주가 보편화 되지 않았던 때에 OB베어의 전신인 동양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 1호점으로 이 곳을 만들었다. 30년동안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 문을 열 때는 이 건물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을 때였다. 아버지에 이어 8년 전부터 이 곳을 운영하고 있는 강호신씨는 30년 전 을지로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한다. 

“지금은 번화가가 됐지만 그때는 이런 큰 건물들은 거의 없었죠. 건물이 막 새로 지어지고 있을 때였고 작은 가게들이 정말 많았어요. 공구가게랑 타일가게가 있었고 한 평 반짜리 가게에서 몇 십년 씩 작업하던 장인들이 있었어요. 종이를 싣고 다니는 삼촌들이 되게 많았던 게 기억나요. 그때도 인쇄소가 있었으니까 종이들을 옮기던 거였죠. 그 시대는 종이를 훨씬 많이 쓰던 때였잖아요. 달력을 보고, 수첩을 쓰고, 편지를 보내고 하던 때니까. 그래서 이 곳이 아주 활황이었어요. 인쇄를 하려면 종이도 있어야 하고, 잉크집도 있어야 하고, 인쇄소도 있어야하고, 스프링 작업도 해야 하니까 관련된 것들이 다 모여 있었어요. 지금도 기억이 나요. 스프링 제본할 때 나는 ‘탈탈탈’ 하는 소리가.”       



인쇄소와 공구집이 많던 거리에 처음으로 맥주집을 열게 되면서 강호신씨의 아버지는 2년 동안 가게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했다. ‘장사를 하려면 골목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강효근씨의 신념 때문이었다.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면 문을 닫았고,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기 전에는 항상 골목길을 쓸곤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어진 그의 꾸준함은 골목의 상인들과 주변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었다. 

“을지로 3가가 그때는 역무원들이 지하철을 교대하던 역이었어요. 아침에 들어가고, 아침에 퇴근하고. 지금은 다 자동이지만 그 때는 종이 표를 받았으니 역무원들이 훨씬 많았었죠. 역무원 분들이 퇴근하고 아침에도, 저녁에도 오시곤 하셨어요. 역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때 토론한 곳도 여기였죠”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고객들이 늘어났지만 아버지는 영업시간을 바꾸지 않았다. 맥주 한잔을 마시더라도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얼굴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OB베어는 11시면 문을 닫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은 영업시간 뿐 만이 아니다. 맥주 맛과 안주도 변함이 없다. 특히 이 곳의 맥주 맛을 좋아해 단골이 된 이들도 많다. 

“냉장 숙성된 맥주만 판매해요. 그래서 일요일 같이 맥주가 일찍 동나는 날은 밖에다 붙여요. ‘냉장 숙성된 맥주가 소진되어 일찍 마감합니다’라고. 보통은 냉동이 되지 않은 통에 맥주가 들어있다가 냉각관을 통해서 나오는 것인데, 우리는 보관 통 자체가 냉장고에요. 그날 날씨에 따라 마시기에 적정한 온도가 있는데 그걸 확인해서 날씨에 맞게 다 다르게 맞추는 거죠. 아버지는 지금도 아침이면 날씨를 확인해서 제게 전화를 하세요. ‘오늘은 32도니까 이 냉장고 몇도 보고 저 냉장고 몇도로 맞춰나라.’ ‘저녁때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니까 냉장고 온도 올려놔라’ 라고요.”

맥주 뿐만 아니라 안주도 그 때의 메뉴와 맛을 유지하고 있다. 연탄불에 굽는 노가리도 그대로고, 아버지와 강호신씨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그 고추장 맛도 그대로이다. 노가리 원가가 1천원을 넘긴지 오래지만, 아버지가 단순히 이윤 때문에 이 일을 하신 것이 아님을 알기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이러한 신념이 고집으로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뼈대만 올라간 건물을 계약해 맥주집을 시작하신 것도, 몇 년을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며 가게를 지켰던 것도, 장사가 더 잘 될 수 있었음에도 10시면 문을 닫고 가격도 올리지 않은 것도, 작은 가게를 한번의 리모델링 없이 그대로 이어온 것도. 모두 아버지의 흔들리지 않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 이 가게의 철학이 되었고, 역사가 되었다. 강호신씨는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 존경한다. OB베어 내부는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아버지의 고민이 곳곳에 스며있다.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테이블은 처음에는 의자 없이 서서 마실 수 있도록 그 때의 평균 키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후에 좌식으로 바꾸면서 만든 의자는 오래도록 쓸 수 있도록 직접 용접을 한 흔적이 있다. 문 앞 테이블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걸리지 않도록 사선으로 깎아놓은 모습도 인상적이다. 유행에 따라, 필요에 따라 없애고 다시 만들고, 다시 사고 바꾸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이곳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 이야기와 추억을 던져준다.      



한동안 을지로는 거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골목에 테이블과 의자를 깔 수 없게 했다. 건물 평수가 작아 이 시기를 어렵게 보냈지만 그는 이 때를 단골의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한다. 

“이 작은 공간에 서른명까지 앉아서 맥주를 먹곤 했었어요. 특히 단골 분들은 가게가 어려워저 문을 닫게 될까봐 일부러 불편한 자리에 앉기도 하고, 정말 추운 날에 밖에서 맥주 한잔 하고 가기도 하고 했었죠. 다들 그 시기를 어떻게 버텼냐고 하는데 제가 아니라 저희 단골 분들이 그 시기를 버텨줬어요.” 



오랜 시간 단골들의 맥주집 이었던 이 곳은 몇 년 사이 을지로가 주목받고 레트로풍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날씨가 좋을 때에도 궂을 때에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이 골목에는 보기 힘들었던 20대가 부쩍 많아졌다. 강호신씨는 이런 변화를 즐겁게 맞이한다. 

“아버지대부터 오시던 단골손님들도 여전히 오시고 젊은 친구들도 많아졌어요. 할아버지, 중년층, 20대 어린 친구들까지 모두 다 섞여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스타일을 좋아할까 걱정했는데 이대로가 좋다고 하더라구요. 가끔 어르신분들은 젊은애들 좋아하는 안주를 사주겠다며 본인들이 안드시던 안주를 시켜주시기도 하고, 맥주 두잔 살테니 가져다 주라고 하시기도 해요.”      



최근에는 을지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달갑지 않은 주인공이 되어 또 다른 측면의 관심을 받고 있다. 건물 임대계약 연장을 놓고 현재 건물주와 소송중이다. 2018년 8월에 100년 이상 보존가치가 있는 가게를 발굴하는 ‘백년가게’에 선정된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가게를 비우라는 내용증명서를 받았다. 임대료를 올리더라도 이 곳을 지키고자 건물주를 찾아갔지만 건물주는 인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대한민국에서 긴 세월을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지켜온다는 것은 어려워요. 우리 같은 일이 발생하고, 또 많은 유혹이 있어요. 아버지는 그 무수한 갈등을 뿌리치시고 이태까지 오신거죠. 제가 이어나갈 책임과 의무가 커요. 백년가게가 되면서 아버지의 역사는 써드렸으니 이 곳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 역사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죠”      


어려운 일을 겪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문화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껴 외롭지 않다는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곳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을지로의 변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 했다.      

‘을지로에는 아주 작은 생맥주 집이 있다. 맥주 맛이 좋고,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와 변하지 않는 맛있는 고추장이 있는 곳. 그리고 그 곳은 대를 이어 100년을 했다’     

“이렇게 남는 것이 제 꿈이예요. 우리 손님들이 지켜준 시간처럼 그렇게 ‘느리지만 다름이 있는 가게’로 지켜나가고 싶어요.” 




글 안유선 curator@hanexpo.co.kr

본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월간한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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