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렇게 끝낼 거냐?"

자신의 행복을 갈구하는 사제.

by 최익석bomiromi

벗에게.
찬미 예수.

1.
시시각각.
정오를 넘겨서도 날이 개이지 않기에
이번 추석에는 만월을 못 볼 줄 알았습니다.
예보는 일주일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했었죠.

속초중앙시장에서 마눌 심부름을 하는 중에 다행히 구름 사이로 햇볕이 새어 나왔습니다. 저녁이 되니 제법 하늘이 열립니다. 덕분에, 완벽함에는 약간은 부족하지만, 보름달(Full Moon)에 가까운 밝은 달이 바다 위에 걸렸습니다. 조도와 유람선과 보름달의 조화는, 이곳 동명항의 양보할 수 없는 천연과 인공의 걸작품입니다. 무모한 인간이 난리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 모습은 반영구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초저녁 동명항 하늘에 걸린 달. 흐린 하늘 끝에 드러낸 모습인지라 반갑기가 몇 배나 더하다. 공기도 청량하기가 ‘지난했던‘ 지난 여름에 비할 바 아니다.

2.
엊그제, 절친 하나가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홍성남(마태오) 신부의 중앙 일간지 인터뷰 기사입니다. 여러모로 익숙, 친숙한 사제이지만 의외로 모르고 있던 부분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허긴, 숱한 미디어와 저술, 강론, 미사를 통해 접한다 하더라도 사제의 깊은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마흔이 넘은 사내가, 그것도 가톨릭 사제가 다리 난간 위에 올랐었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가 어느 종교보다도 높고 엄격한 가톨릭의 사제가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개인사입니다. 결정적 순간에 하늘의 소리를 들었군요. 그리고는 이내 예수회 사제의 도움으로 영성심리학의 세계로 인도됩니다. 이후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입니다.

“마흔두 살 때였다. 홍 신부는 지방의 한 도시에서 강물 위, 인적 없는 다리 난간에 서 있었다. 뛰어내릴 참이었다. “그냥 무(無)로 돌아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 내가 남긴 발자국도 없어지겠지, 생각했다.” 그때 허공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이렇게 끝낼 거냐?” 처음에는 환시인가, 환청인가 싶었다. 다시 뛰어내리려는데, 또 들렸다. “이렇게 끝낼 거야?”

홍 신부는 돌이켜 생각했다. “내 나이 마흔둘. 문득, 이렇게 끝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무렵 한 후배가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예수회 신부였다. “별다른 기대 없이 갔다. 그런데 내 삶이 통째로 바뀌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473391?sid=103

70대 초반의 홍성남(마태오) 신부. 실제의 모습(옷매무새, 말과 몸빠름 등)은 매우 젊다. 유머 감각이나 구사하는 언어 또한 그렇다. 80세까지도 아마도 이 모습일 것이다.


3.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또는 들키고 싶지 않았을 내밀한 상처였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용기를 갖고 언론에까지 고해에 가까울 정도의 고백을 하는군요.

‘그이 정도의 고명한 영성 고수도 이런 고민과 아픔을 지니고 사목을 하는구나.’

많이 놀랍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런 솔직함에. 신학교(신학대학)를 ‘사제양성 사관학교’라고 직격 하는 데에서는 충격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영성심리대학원이 그에게는 고해소이자 수도원 같았다는데 대해서도. 그의 언행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는 괜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만 39년의 얼치기 날라리 천주쟁이의 삶을 살아오면서 접한 많은 목자들을 기억합니다. 빼어난 영성가도 여럿 계셨었죠. 그들은 여전히 묵묵히 하늘의 길을 걷는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언젠가 모 사제는 유럽에서는 수도회 사제를 진정한 사제라 여기고 그들을 ‘파더(Father)’라고 칭한다고 하더군요. 자신과 같은 교구 사제는 그냥(?) ‘돈 Don’이라고만 부른다죠. 모두 나름의 흠과 결을 지니고도 있을 겁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구도자로서의 ‘그 길’을 가고 있을 겝니다. 미욱한 양들의 굳건한 신앙의 롤모델로서.

‘꼭꼭 씹어’ 삼킬 수 있는 지혜를 하늘은 목자에게나 양들에게 공히 허락하실 것임을, 중추가절에 동쪽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믿.고 또 기. 도. 합니다.

그사이 달은 중천으로 옮겨 왔다. 내일이면 완전한 모습의 만월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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