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하루
1.
어제.
춘천 롯데시네마.
“(여자 스텝) 죄송합니다, 손님. 예약하신 정보가 안 뜨네요.”
“….”
“이상하네. 조금만 더…”
“….”
“아무래도 이상하네. 잠깐만요, 사장님 모시고 올게요.”
잠시 후.
“(사장인 듯한 중년 여인 ) 응? 이상하네. 안 뜨는데?”
“고롤리가. (다시 한번 핸펀 속 예약번호를 보여주며) 전산망 다운된 건 국가 꺼이지 민간 꺼는 아니잖는감유?”
“그러게요…”
“천천히 찾아보셔유..저엉 아니 나오면 ’ 어쩔 수가 없’겠지유? 매뉴얼로 표를 찍어내실 수밖에. ㅋㅇ“
“(ㅎㅎ 웃으며 한참 두드리더니) 이제 나왔네요. 자, 여기 티켓…!”
팝콘 쇼케이스 반대편에 놓여있는 모니터로 옮겨가 차량번호를 일러준다.
“(여자) 세(3) 시간 넣어드렸어용~~!”
2.
지방 소도시의 영화관은 직영이 아닌 프랜차이즈 영화관임을 직감한다. 매니저가 아닌 ‘사장님’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어쩐지 시스템 운영 형태나 영화관의 디테일이 서울이나 수도권의 그것들과 차이가 있다. 영화관에 앉으니 스크린도 그렇다. 천을 누빈 듯한 가장자리 마무새와 코너 구석이 주름진 모양이라니.
두서넛 씩 드문드문 앉아 있는 중년 여인들의 소곤거림이 쉴 새가 없다. 앞과 옆에서. 월요일 오후 이 시각에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라면 매니아 수준의 팬이라고 짐작했었다. 평소라면. 인내심 많은 마눌은 묵묵히 정지 상태의 스크린만 응시하고 있다. 와중에 흐르는 광고의 메시지가 어수선하다. 허. 공. 에 공. 허. 하게 흩어진다.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자 여인들의 수다는 다행히 그쳤다. 대신, 영사기가 돌아간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대략 30여 분?) 뒷좌석에서 일어선 건장한 친구’들‘이 두어 차례 앞으로, 한가운데로 내려 걸어 나가 출입구를 드나든다. 화장실을 오가는 것인지, 아니면 팝콘을 사들고 오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3.
영화가 그랬는지, 아니면 영화관 분위기가 그래서였는지 초반을 약간 졸았다. 덕분에 스토리 일부가 연결이 안 된다.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하니 대략은 꿰어 맞출 수 있었다. 이후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며 집중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미쳤구나.
박휘순의 연기 반전은 그중에 백미. 느와르 류의 영화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의 진중, 냉정, 때론 냉혹한 연기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속 캐릭터(라인 매니저 ‘선출’ 역)에 맞는 연기를 주문했었을 것이고 연기 지도(?)가 뒤따랐을 것이다. 박휘순 정도의 배우를 연기지도하는(할 수있는) 감독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정도일 성싶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병헌은 거의 입신의 경지에 들어선 듯.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출산 후 손예진의 몸을 던지는 연기도 인상적. 한 단계(또는 퀀텀 리프?) 도약한 느낌이다. 로코에서 스릴러 장르로 옮겨가기에 충분하다. 유연석과 오달수가 출연하는지는 몰랐다.
박휘순의 시골집(별장)과 이성민, 염혜란 숲속 집 장면 촬영지가 ‘자작나무 숲’이 위치한 인제 원대리 인근일 것이라 짐작된다. 이들은 저 장면들을 위해 인제 산중에서 고생하다 ‘옛날 원대 막국수’ 집에 들렀을 것이다. 이를 의식하고 스크린에 집중하니 장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젊은 주인장과의 만남이 이렇게 빠른 관람(그것도 춘천에서)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에서 원작자가 따로 있음을 확인한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당연히(?) 모른다. 작품명은 엑스(The Ax). 박찬욱과 이경미 등이 극본을 맡았지만 장르가 (박찬욱표) 장르인 만큼 박찬욱의 손을 당근, 제일 많이 탔을 것이다. 돌돌 말린 차승원(고시조 역)의 알몸이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이 낙지를 산 채로 물어뜯어먹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그 예.
덧:
. 감상평은 기라성(일본식 한자어인 줄은 최근에
알았지만 괜찮은 표현이기에 그냥 유지한다.) 같은 글쟁이들에게 부탁.
. 글로벌한 위기이겠지만 한국의 영화관(특히 지방)이 겪고 있을 어려움을 피부로 느낀 하루. 서울과 수도권 외의 영화관을 경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 40년도 훨씬 이전인 ’80년 대 초중반 군복무 시절(춘천 캠프 페이지) 당시의 ‘육림극장‘이 있긴 하다만. 작금의 영화관 환경과는 전혀 달랐던 때임을 감안하면 비교 대상이 아니다.
.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보낸 춘천은 그런 의미에서 제2의 고향 격인 도시다. 지역살이 1순위로 리스트에 올려두기도 했던 곳. 상전벽해하긴 했지만 여전히 다감한 고장이다. 그러했음에도 먹거리나 맛집은 지인들의 경험에 의지하는 바가 오히려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