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과 정미연

수묵화와 서양화(성화)로 만난 부부

by 최익석bomiromi

1.

故 이건희 회장이 작고한 지 벌써 5년이다.

오늘 아침 우연한 기회에 그의 5주기 관련 기사를 접하고는, 늘 서로 그러하듯이, 이미 먼저 접한 이들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옛 선후배들이 함께하는 단톡방에 올려놓았다. 기사 중 눈에 띄는 대목.


"이 회장이 보유했던 미술 작품 2만 3000여 점을 기부해 구성된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문화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유족들은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미술품 2만 16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내외 작가들의 근대작품 16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제주 이중섭미술관과 강원도 박수근미술관 등에도 기부해 지역 문화 인프라 향상에 이바지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2021년부터 전국 주요 전시관에서 순회전을 진행해 35회에 걸쳐 35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기업가로서 그가 대한민국 사회에 남겨 놓은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이건희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그의 미술(예술)에 대한 기여(후원)와 공헌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2.

마눌이 운동(요가)하러 나간 사이 혼자 커피를 마시며 TV 채널을 돌리던 중에 한 곳에서 멈춘다. EBS1의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라는 프로그램이다.


'일전 강우현 회장의 '탐라공화국'을 소개했던 그 프로그램이로군....'


몇 년 전 함께하는 모임(KOC:KAIST ONE CLUB)에서 단체로 제주를 방문하여 만나 뵌 적이 있던 그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끝가지 시청했었다. 당시 동행했던 마눌이 먼저 알아보고 채널을 고정했더랬다.


오늘 소개(아마도 재방송인 듯하다)된 이는 수묵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


'어라? 오늘은 이 냥반이시네?'


재작년, 중남미 오지에서 사선을 함께 넘나든 선배의 큰 딸 혼사(경북 청도) 참석 후 가족(마눌, 결혼 후 도미(渡美)/파견 전 큰 아이) 여행차 경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관람한 곳 중의 하나가 솔거미술관. 이곳에서 박대성 화백의 세계를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박 화백의 고향이 청도다.


'우연이로고...'

청도 어느 산속 깊은 곳 천주교 공소에서 치른 선배의 혼사(좌), 경주 솔거미술관 박대성 화백의 대작 ‘코리아 환타지’ 앞에 선 모녀.

3.

흥미롭게 지켜보는데 그의 입에서 이건희 회장 이름 석자가 나온다.

그가 전하는 이 회장과의 인연의 요지는 이러했다.


(80년 대) 어느 날 이 회장이 40대 젊은 화가를 발굴하라는 지시를 회사 스태프들에게 내렸는데, 그리하여 삼성에서 자신을 찾아냈고, 그 결과로 자신이 '호암 갤러리' 제1호 '전속 화가'가 되었으며, 그(삼성)의 후원 덕분에 경제적인 걱정 없이 맘껏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었더라는 것. 해외 작업(관람 등) 시에는 이 회장이 노잣돈까지 아낌없이 쥐어준 적도 있었더라면서. 당시 돈으로 물경 2천만 원.

고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을 담담히 풀고 있는 박대성 화백.

박 화백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최종 학력이 중졸(TV 속에서 본인은 중학교 중퇴라고.)이다.

6.25 직전 네(4) 살 때 공비(빨치산)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왼손을 잃었다. 아버지 없는 장애자가 척박한 세상을 살기가 힘겨웠다. 중학교 중퇴도 그런 까닭이었다. 대한민국 국전에 스물세 살의 나이에 입선했는데 서울대, 홍대 미대 등 유수의 미대 명문들 기득권의 질시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회 연속으로 국전에서 입선한다. 무학에 가까운 한 손 없는 장애자가 이뤄낸 입지전이다.


인간 이건희의 사람(인재)을 알아보는 안목은 박대성 화백에게서도 빛났던 셈이다.

‘불국설경’. 박 화백은 언젠가 맨하탄 밤거리를 걷다가 마천루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불국사를 생각했단다. 3일 만에 보따리를 싸서 귀국, 불국사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4.

박대성 화백의 반려자는 정미연 화백이다.

한국 가톨릭 성화(聖畵)와 조각의 대가다.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출신으로 가톨릭 세례명은 '아기예수의 데레사'. 독특하다. 췌장암을 이겨낸 의지의 소유자.


대담 중에 박 화백을 '선생님'이라 칭한다.

궁금하여 찾아보니 대략 띠동갑쯤 되는 나이 차이가 있다. 자신들의 경주 자택 뒤뜰에는 정 화백의 작품들로 그득하다. 마치 야외 미술관(서장훈 표현) 같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

시간과 공간, 삶과 그 살아가는 정신이 다를 수 없으니 닮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TV로 보는 이들 부부도 물론 그러하다. 박 화백 작업실 한쪽 구석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자 잠자리(침실)가 있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의 방이다. 창문이 없는 마치 토굴 같은. 그 속에 성경이 놓여있고 한쪽 벽엔 십자가가 걸려있다. 짐작컨대 아내 정 화백의 작품일 성싶다. 그는 이 볕 없는 방에서 책(성경) 읽기와 묵상을 즐긴단다. 동양 수묵화의 대가와 서양화(성화)로 이름 높은 이가 만나 이런 합(合)을 이룰 수 있음이 신묘하기만 하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 2부는 내일(10.22일) 저녁 EBS 전파를 탄다.

박대성/정미연 부부. 닮는다더니 눈매까지 그렇다. 분위기(아우라)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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