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법입니다

마카오의 김대건과 조선 청년들

by 최익석bomiromi

마카오 여행 후 되새겨 본 영화 하나.


박흥수 감독의 영화 <탄생>(2022)은 조선(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짧은 삶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종교 영화이지만 일견 개화기 신문물(문명)에 먼저 눈을 뜬 선각자를 다룬 시대극 같기도 하다. 장엄한 순교가 마지막을 장식하지만 마냥 무겁게만 다룬 것도 아니다. 감독은 중간중간에 비극도 희극으로 승화시킨다거나(형조에서 천주쟁이 아낙이 십계명 대신 무작정 마리아를 안다고 외치는 장면 등) 대사의 묘미를 살리는 재치 있는 유머 코드(배우 윤경호, 현석문 역)도 심어 놓았다. 청년 김대건의 성격도 밝고 긍정적인 톤으로 표현했다. 안성기, 이문식 등 일부 배우 이외에는 정작 주연 배우(윤시윤), 감독과 편집(박곡지. 감독의 아내다. 제작자이기도 하다) 등 주요 스태프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감독은 작품 완성 후 가톨릭에 입문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영화의 작품성이나 완성도(가톨릭 문화원이 공동 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으나 일부 미사 제의 고증에 문제가 있다)가 그닥 빼어나지 못하다. 코로나 말기에 개봉한 탓에 흥행에도 성공한 편은 아니어서(관객수 35만 명) 가톨릭 커뮤니티를 제외하곤 크게 화제가 되진 못했다.

영화 <탄생> 포스터 중 하나. 선교(신앙)보다는 근대화의 기수 청년 김대건에 촛점을 맞춘 시대극이 제작 의도인 듯하다.

영화 초반부에 김대건 신부가 신학생으로서 수학한 마카오가 등장한다. 절친인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조선의 최초 신학생 3인방으로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마련된 신학교에 입교하게 된 것.(1837) 당시의 파리외방전교회는 성 안토니오(Santo Antonio) 성당 내에 이들 청년 신학생을 위해 특별히 신학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성 안토니오 성당. 이곳에서 조선의 열혈청년 3인이 신학생의 삶을 시작한다. 영화에서는서양 언어(라틴어, 불어)를 최초로 배운 조선인으로 표현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
성 안토니오 성당 내부. 성물 및 기념품 코너에 김대건 신부 찻잔 세트가 있다. 1세트 득템.

이들 청년 3인은 지금은 화재로 소실되어 성당 전면부만 남아 있는 유명한 성 바오로 성당 계단에서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결의(자기들끼리는 도원결의로 표현) 하기도 한다.

영화 속 성 바오로 성당 앞 조선 청년 3인. 도원결의를 하고 있다. 오른쪽 밝게 웃는 이가 김대건. 왼쪽이 가경자 최양업. 등을 보인 이가 병으로 요절하게 되는 최방제.

흥미롭게도 "2년 전(즉, 1835년) 화재로 전소되고 전면부만 남아 있다."는 대사가 끼어 있다. 그때도 이미 성당 본 건물은 화재로 없었다는 것. 이들은 이곳에서 라틴어(나전어),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며 신학생으로서 생활을 시작하나 최방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풍토병으로 요절한다.

영화 속 성 바오로 성당(좌)과 오늘의 그곳(우). 오른쪽 노란 건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이 차이가 있다. 맨 끝에 유니클로가 입점. 복도 아치가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김대건, 최양업 두 청년은 아편전쟁을 피해 잠시 필리핀으로 건너가서 생활한 것 외에는 대략 5년 여를 마카오에서 지낸 듯하다. 영화에서는 1842년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 종전 협상 현장에 김대건 신부도 참석한 것으로 나온다. 프랑스 군함의 세실 함장 통역 자격으로. 사실일 것인데 김대건 신부의 언어 감각이 특출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는 프랑스 함대에서 선상 생활한 덕에 별자리를 이용한 삼각측정법에도 능했는데 추후 황해를 넘나들며 프랑스 주교를 조선으로 입국시키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 바오로 성당 전면 우측 한 곳에 세워진 마태오 리치 석상. 영화 속에서는 ’250여 년 전에 그가 이곳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뒷편에 마눌이 점으로 앉아 있다.

마카오는 포르투갈 식민 통치를 오래 받은 탓에 당연히 도시의 풍광이 홍콩과는 사뭇 다르다. 일견 비슷한 듯하지만 훨씬 시골스럽고 따라서 그만큼 소박한 느낌이다. 중국에 반환된 지 이미 30여 년이 된 홍콩에서 영어가 제대로 통용되지 않은 것처럼 마카오에서는 일상 속에서 영어는 물론 포르투갈어가 자취를 감춘 듯하다. 거리나 건물명, 유적지명 등에서나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거리의 상인이나 식당 종업원에게 영어 대신 부지불식 간에 불쑥 포어 몇 마디를 던졌으나 되돌아오는 반응은 전무했다.

량경기. 성 안토니오 성당 인근의 유명 완탕 국수 맛집. 골목길 노천식당이나 맛은 미슐랭급이다. 부부로 보이는 친절한 젊은 주인들에게서 성실하고 진한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김대건 신부는 고향(조국)을 떠난 지 8년 만인 1845년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조선 최초의 사제로 서품 된다. 조선 3대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가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생사를 넘나든 김대건 신부의 공을 높이 치하한 결과다. 신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공부만이 사제가 되는 길은 아니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죽마고우이자 신학교 동기생인 최양업에 비해 사제 서품이 빠른 이유였겠다. 황해를 건너기에는 믿을 수 없이 작은 배(영화에서 페레올 주교는 이를 라파엘 호라 명명한다)와 남루하나 강건한 조선인 천주쟁이 선원들은 영화로 보기에도 감동적이다.

’까모에 공원‘ 내의 김대건 신부 동상. 한국에서 제막(1985)된 것을 이곳 신자들이 옮겨와 봉헌했다.(1997) 성 안토니오 성당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사제가 되어 귀향한 김대건 신부는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고향(당진 솔뫼)에서 미사를 집전한다. 어머니에게 성체를 드리는 장면은 영화의 압권 중 하나.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돌아온 다음날, 트램을 타고 동서로 오가며 섬 전체를 개괄해 보았다. 허리가 여의치 않은 마눌이 며칠 강행군을 하더니 무리가 온 모양이었다. 궁하면 통한다. 마눌이 내놓은 대안이 트램 시티투어. 오가다 맘 내키는 곳에서 내려 맛집이고 구경거리고 즐기면 그만이겠다.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여행 마지막 날에 있을 수 있겠나 싶었다.

홍콩의 트램. 가성비 좋은 훌룽한 투어 방식이다. 홍콩 섬의 명소는 트램을 중심으로 위아래, 좌우로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넘버 원 여행팁.
홍콩의 밤(저녁)거리. 매력 만점의 이 도시는 일상이 지루해지면 아무 계획 없이 백팩 하나 둘러메고 오가기에 안성맞춤의 곳이다.

시내를 쏘다니는 중에 카톡으로 들어온 문자 하나.

절친 후배 아우가 홍콩에 있느냐며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만 자기도 그렇단다. 공교롭게도 마카오에서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마침 앞선 브런치글을 보고 연락을 해 온 거다. 아무렴. 황급히 저녁약속으로 잡은 식당이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며 앉아 있는 카페 인근 소호(SOHO) 지역이다. 자정 넘은 시간의 비행기(Flight)는 하늘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아니 그래도 어제 이미, 마카오 성당 여럿에서 기돗발 좀 세우고 왔음이니 설마 마눌과 나를 이들이 떼놓고 가기야 하겠는가.

천재일우의 가족 간 해후. 회갑 생일을 맞은 아빠와 엄마를 홍콩의 뱅커인 아들이 초청했다. 그의 단골 스페인 식당 수석 셰프와 스탭들이 열렬히 환영, 축하를.

덧:

영화 <탄생>에서 만난 김대건 신부의 명언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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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도피 시절, 신학교 지도 사제인 르브와 신부와 김대건, 최양업 두 신학생이 대화를 나눈다.(하기 대화는 맥락만 유지함)

- 최: 신부님, 고해성사는 작은 죄라도 고해야 하는

거지요?!

- 김: 에이. 어찌 자잘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고할 시간도 없지 않겠어?

- 르: 하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의지대로 고하면 됩니다.

- 김: 나는 그것보다 삼위일체가 더 이해가 안 돼. 어찌 아부지와 아들이 같을 수가 있지?

- 르: 그건 당신들이 유교적 정신세계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에요. 하늘에서는 위아래가 읍써요.

- 김: 에이, 천주교가 오히려 더 계급적이던데유? 맨날 순명하라, 복종하라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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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 김대건, 최양업 두 청년이 대화를 나눈다. 마침 김대건은 서양인 지리학자가 남겨 준 도구를 이용하여 하늘의 별을 보며 위치를 파악하는 중이다.

- 최: 우리가 언제 조선에 돌아가게 될까…

- 김: 바다라는 게 모를 때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게 되면 길을 알려주잖아.(바다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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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올 주교와 조선인 천주쟁이 선비들, 김대건이 조선으로 들어갈 길을 모색하나 뚜렷한 방안이 없다. 만주에서 4년이나 기다려온 주교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김대건은 이번엔 혼자 국경을 넘어갔다 오겠다고 한다. 의주를 우회하는 길이 있다면서.

- 선비:(손가락으로 지도 위에 길을 내는 대건을 바라보며) 여기는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 대건: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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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은 끝없이 길을 찾는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묻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은 언제고 늘, 도처에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기를:


“당신은 천주교인입니까…”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당신은 천주교인입니까…”


공동체를 이루는 이들에게서 그는 늘 희망을, 길을

찾았던 듯하다. 이 물음은, 그리고 믿음은 지금도 공동체 울타리 안팎의 모두에게 공히 유효할 것이다.

마카오 성 바오로 성당 내 박물관. 암석 위 십자가가 여느 가톨릭의 그것 대비 매우 검소, 담백한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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