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성 글라라수도원
누님께,
요 며칠 바람이 거셉니다. 전국 곳곳에 산불이 또다시 극성입니다. 어쩜, 매해 어찌 이리 똑같은지요. 자연발생적 산불은 천재지변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재에 의한 산불 소식을 듣다 보면 허탈하기만 합니다. 인간이란. 그 우매함이란.
어제는 인근 양양에 소재하는 수도원을 다녀왔습니다. '성 글라라 수녀원'이라죠. 몇 개월 전 마눌이 가깝게 지내는 교우에게서 그 존재를 듣고서는 그곳에서 한 번은 미사참례를 하고 싶다고 했겠지요. 차일피일 미뤄오다 결단을 내리고는 이른 아침부터 채비를 차렸습니다. 자동차로 40여 분 가까이 걸리더군요. 양양 공항 인근, 7번 국도 안쪽 깊숙이 굽이굽이 들어가는 곳에 위치합니다. 유명한 골프리조트인 '설해원(雪海園)'를 지납니다.
관상(觀想) 수도회(Contemplative Order)입니다. 사도직 활동을 함께하는 활동수도회(여느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수도자들의)와는 구분되는, 통상 봉쇄수도회라고 불리는 바로 그런 수도회입니다. 그렇다고 일반 신자(일반인 포함)의 접근을 아예 차단하지는 않는군요. 성당 안 메인 좌석에는 수도자(수녀)들이, 그리고 제대 옆 작은 공간에는 외부인들이 자리를 잡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마눌과 저는 처음 경험하는 미사입니다. 오래전 작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는 언젠가 우리도 유럽의 수도원을 둘러보자고 했었지만 아직까지는 '계획'에 머물고 있습니다.(올 하반기에는 기어이 실행에 옮기고자 합니다.) 비교하자면, 분위기는 3년 여 전 누님과 그리고 '화요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모교의 예수회 사제관과 유사합니다. 차분하죠. 정결하고 정갈합니다. 미사도 간결, 담백합니다. 10여 명 남짓의 수도자들이 부르는 성가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목소리를 섞기가 저어 될 정도로 성스럽고(holy) 맑습니다.
미사 후 수도원 경내를 잠깐 둘러본 다음 차를 몰고 막 울타리를 나서려는데 장년의 수녀님(원장으로 보이는) 한 분이 저희 부부에게 다가 오더군요. 이날 미사를 마지막으로 새 임지로 떠나는 사제를 손을 흔들며 전송한 후였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요?!
성가 중에 좋은 목소리가 들리기에 궁금했습니다."
"(이러저러 일러드리자)아, 그러시군요. 차 한 잔 함께 해 드렸어야 했는데...."
"(마눌과 저의 세례명을 일러드리자) 저는 황 루시아 수녀입니다."
"(자주 오겠다고 인사드리자)네, 다시 오세요. 그때는 꼭 차 한잔..."
날은 맑고 태양은 밝았으나 여전히 바람은 거셌습니다. 섭국으로 유명한 읍내 외곽의 맛집에서 뚝배기에 담겨 나온 따가운 국(.. 이라기보다는 탕湯)으로 제 몸을 달랬습니다. 미사 중 (이름 모를. 1년 전 미얀마 오지에서 사목 후 귀국했다는.) 사제는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오 4, 4)는 화두를 주제로 '빈자', '덜어내는 삶'의 미학을 잔잔하게 설파했지만, 땀을 뻘뻘 흘려대며 맛난 음식을 탐하는 제 몸을 제 영혼은 제어하지 못하더이다. 어쩌겠습니까. 인간이란.
<수도원 기행(1)>(2001)에서 공지영은 프랑스의 '아르정탱' 봉쇄수도원에서 만난 라타피 할머니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 딸은 얼굴도 예쁘고 남자친구도 많았어요. 공부도 잘했죠. 그런데 대학 들어가고 어느 날 프랑스 여행을 다녀와서는 수도원, 그것도 이곳 아르정탱 수도원에 가겠다는 거예요...(중략) 글쎄요, 만일 딸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냥 그저 그런 나이롱 신자로 살아을 거야, 진짜 하느님을 만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런데 우리 딸이 여기 들어오더니 미친 듯이 행복해하는 거야. 그러니 하느님이 계신 게 틀림없다는 걸 나는 알았지."(수도원 기행, p60-61)
공지영은 라타피 할머니가 '씩씩한 영어'로 발음한 "테러블리 해피"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닿았다고 했습니다. 봉쇄수녀원 수도자들의 인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라파티 할머니의 이 한 마디가 제격이더라는 것이었죠. 마치 '너무나 마음에 드는 사위에게 딸을 시집보낸 친정엄마처럼'.
최근 칼 세이건의 불후의 명저(닐 타이슨의 표현으로는 magnum opus) <코스모스>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의 들어가는 초입을 다음과 같이 장식했죠.
"For Ann Druyan.
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숱한 연애편지에 인용되었다는 바로 그 문장입니다.
간지럽지만 'Annie' 대신에 저는, 오늘만큼은 마눌은 물론이고 가족과 시대를 함께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넣고 싶군요. 글라라 수도원의 루시아 수녀님 포함 라타피 할머니의 따님들 같을 수도자들도 당근, 입니다.
덧.
4월 중순에 마눌 손잡고 유럽 성지 몇몇 곳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벨기에의 바뇌(Banneux), 프랑스의 루르드, 스페인의 부르고스 및 산티아고, 포르투갈의 포르토, 그리고 파티마. 주로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기적의 성지'들입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라서는 전혀 아니랍니다. 순전히(?) 결혼 35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마눌에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하면 혹시라도, 늦으막에도 젖은 낙엽처럼 마눌 옆에 찰싹 붙어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뱀발.
1.
연세대 천문학과를 졸업한 세이건빠 이명현 박사(전파천문학자)는 <코스모스>의 공식 라이선스판 번역가였던 서울대 홍승수 교수(2019년 작고)를 자신의 평생 사표로 삼고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칼 세이건의 저 유명한 서문의 번역은 홍 교수의 그것보다는 해적판을 번역했던 신문기자 출신의 서광운의 번역을 더 좋아한다는군요.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저는 둘째가 고딩 때 보았던 영문 원서(닐 타이슨의 2013 개정, 증보판)만 갖고 있습니다. 서광운 번역본은 구할 수 없을 것이니 홍승수 교수의 그것을 구입하려 합니다.
2.
홍승수 교수는 천주교 신자(세례명:라파엘)였습니다. 유신론자인 그가 무신론자(정확히는 불가지론자)인 칼 세이건의 권위자가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필연'이겠습니다. 그는 자연과학자이면서 동양철학에도 정통했다는데 아마도 과학과 철학을 자신 신앙의 자양분으로 삼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