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ward Bound

귀로. 집으로 가는 길.

by 최익석bomiromi

누님께,


한동안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강추위에 한껏 게을러진 탓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으리라 믿습니다. 암만요, 세상이 제아무리 탁해졌다 하더라도 하늘은 늘 희망을 갖는 이의 편임은 변치 않는 진리요, 자연이며 당연입니다. 선한 이는 그 진리요 자연이며 당연함 속에 순리대로 살아갈 자격, 아니 권리가 있음 또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날은 많이 따뜻해졌으되(이곳, 이 시각 현재 11도) 대기는 매우 불량합니다. 미세먼지로 저 건너 롯데리조트조차도 희뿌연 먼지에 가려 시야가 미치지 못합니다. 이 겨울에도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이 포구마을과 설악 동편은 눈이 전혀, 거의 내리지 않았습니다. 비조차도 뜸합니다. 많이 건조하죠. 지난해에는 3월 초에 눈이 몰아쳐 폭설로 내리더니만 올 겨울에도 말미에나 눈구경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마눌과 함께 TV로 유튜브를 서핑하는 중에 우연히 정미조의 음악 클립이 눈에 들었습니다. '오늘은(onulun)'이란 라이브콘서트 채널이군요. <귀로>, <개여울>, <어른> 등이 실렸습니다.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
어느 기간 속에 숨어버렸는지
나 그곳에 조용히 돌아가
그 어린 꿈을 만나려나
(<귀로> 1절)


'고향'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에게 이즈음, 특히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 오늘, 딱히 어울리는 노래입니다. 일전 낙서에서도 끄적인 바 있는 <7번 국도>와 함께 복귀 앨범 <정미조 37 year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이틀 곡입니다. 그녀의 저음으로 삶을 관조하고 있군요. 최백호 형님의 간곡하고 간절한 노력으로 가요계에 복귀한 정미조를 위해 이주엽이 노랫말을 쓰고 손성제가 곡을 붙였습니다. 정미조는 외롭고 고독했던 프랑스 유학시절, 고향(고국)을 그리며 샹송을 자주 읊조렸답니다. 파리의 차가운 작업실에서 느꼈을 그 막막한 향수를 노래로 달랬겠죠. 이 <귀로>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군요. 자신의 자전적 서사와 공명되고 그 정서가 투영되었다는 얘기겠지요.(동영상 참조)


정미조의 노래 세 곡을 듣고 있자니 마음속에 김윤아(자우림)의 <Going Home>이 떠올랐습니다. 노래의 정서가 비슷해서였겠죠. 그런가 했는데 기가 막히게도 유튜브는 그 <Going Home>을 바로 뒤편에 이어 붙였습니다.


'이럴 수가...!'


AI 알고리즘이 사람 마음속까지 읽어내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건 뭐, 거의 신(神)이로군!'


마눌도 마냥 신기해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중략)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김윤아, <Going Home> 부분)
동영상 속 뒤편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청년(?)이 김윤아의 동생 김윤일입니다. 귀를 쫑긋하면 2절에 코러스로 들어오는 그의 보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 출연(2011. 7) 이후 저의 최애 가수 중 하나가 된 김윤아는 이 노래 <Going Home>(2010)을 자신의 남동생(김윤일)을 위해 만들었다죠.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막내 동생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전후 사정은 모르겠지만 김윤일은 당시(2011.11) 나가수 무대(커버곡 <아브라카다브라>, '수리수리 마수리'라는 뜻)에서 백코러스로 등장했습니다. 이후 누나의 공연 및 음악활동 막후에서 보이지 않는 조력자(코러스 보컬 포함)로 활동해 왔더군요. 김윤아 자신도 지병(안면근육 신경마비)에 시달리던 중에 나가수에 출연했었는데 사랑하는 남동생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그리고 무대를 함께 했던 거죠.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지닌 그 지병과 꿋꿋하게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내친김에 고향 또는 귀향을 그리는 노래를 연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 저의 영원한 우상, 사이먼&가펑클(Simon & Garfunkel)의 집을 향한 애틋한 서정의 노래 <Homeward Bound>

. 미쿡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전후에 빠지지 않고 전파를 타는 조시 그로번(Josh Groban)의 <I'll be home for Christmas>

. 화려한 도시의 조명 뒤에 가려진 고독과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보픈 절절함을 담은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의 <Home>. 실은 최근에 이 곡을 라디오에서 들은 바가 있었죠. 가사가 궁금하여 서치 해 보았었는데 아마도 알고리즘이 이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귀로>가 제 손에 걸렸던 이유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 동편마을 바닷가살이를 시작한 이래 동서울터미널을 떠날 때마다 듣고 있는 박은옥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마치 포구가 제 고향이기라도 한 듯 집과 사람에 대한 저의 짙은 심상을 건드리는 노래죠.

. 존 덴버의 레거시가 묻어 있는 <Take me home, Country Road>는 진부하다 못해 차라리 클래식입니다.


고향, 집을 담은 누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들어있는지요.


마눌에게는 주말이면 미쿡의 아이들과 페이스톡을 하는 것이 일주일 중 최대의 기쁨입니다. 물론 제게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모녀들 사이의 수다는 미니멈 1시간입니다. 매주 풀어대는 이야기보따리는 시작하면 끝날 줄 모릅니다. 심지어 아무 말없이 화면만 띄워 놓은 채 각자 제 할 일을 하며 몇십 분을 지내기도 하더군요.. 공간은 달라도 시간을 함께 한다는 기쁨이 그녀들에게는 있는 듯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물론 '집(Home)'이 존재합니다. 가족 간의 유대감과 이 '집'의 정서가 갖는 힘을 태평양과 열댓 시간의 시공간이 제아무리 넓고 크다한들 넘어설 수 없는 거죠. 가족이란, 집이란 그런 것임을 그때마다 절감합니다.


Another winter day has come and gone away
In even Paris and Rome and I wanna go home
Let me go home
And I'm sorrounded by a million people
I still feel all alone
Let me go home
(마이클 부블레, <Home> 부분)
호스트인 젊은 미청년이 마이클 부블레. 음색도 외모만큼이나 미성입니다.

설날 귀향길에 나선 이들에게는 도로 사정이 만만치 않겠습니다. 명절에 찾을 고향이나 집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는 저희 부부에게는 양가 부모님을 함께 모신 묘원이 그나마 집이요 고향일 듯합니다. 이마저도 멀리 바닷가로 삶터를 옮겨온 이후로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이곳에 머물 요량인지라 마음 뿐인 '귀향', '귀성'을 이어가야 할 듯합니다. 자식의 도리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 죄스러움은 대신 품넓은 부모의 도량과 온유함으로 갚으려 합니다.


평안하십시오.


덧.

문득, 프라이스 신부님을 누님의 성심(誠心)으로 다시금 기억합니다. 덕분에 참석했던 탄생 100주년 행사 그리고 화요가족 모임, 벌써 3년 여(2023.6)가 흘렀군요. 그러고보니 제게는 모교가 일생에 이어지는 제 믿음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가호가 신부님께, 그리고 누님께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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