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져라!

(나눔과 봉사에 대하여)

by 최익석bomiromi

시골살이 탓에 요즘은 자주 어울리지 못하는 동호인 모임이 있다. 미니벨로 자전거인 브롬톤(Brompton)을 매개로 다양한 형태의 액티브한 활동을 엮어가는 패거리(?)다. 이름하여 케이비에프(KBF, Korea Brompton Friends).

애마 ‘나의 브롬톤’

몸은 멀리 바닷가에 떨어져 있으니 대신 온라인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소모임 활동만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책 읽기. 주제와 관계없이 매일 30페이지 정도를 읽고 이를 소모임 단톡방에 기록해 가는 중이다. 덕분에 서점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가에 꽂혀있는 상태로 주인의 손길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책에게 비로소 눈길을 줄 수 있는 기회도 잦아졌다. 오늘 우연히 시청한 TV뉴스에서 탄핵 정국 이후 거리의 시민에게 소감을 묻는 인터뷰 하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기자가 물었다. 앞으로는 어떤 대통령을 기대하느냐고. 청년 왈, 유튜브보다는 책을 읽는 대통령이 보고 싶단다. 청년의 말에 나 스스로가에게 덜 부끄러움을 느꼈다. 브롬톤 덕분이다.




둘째 결혼식으로 미국에 3주 정도 체류할 예정이다.

출국하기 전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을 모두 반납했더니 읽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뭘 읽어볼까.... 하며 책장을 쭈우욱 훑어보는데 눈에 뜨이는 책 하나. 빼어보니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이다. 시집이라면 모를까 시인의 산문집을 일부러 사서 꽂아두었을 리가. 발행 연월이 2006년 6월이다. 1판 23쇄. 곰곰이 헤아려보니 멕시코에 주재 중이던 때다. 오호라. 당시 멕시코를 다녀간 출장자 중의 하나가 선물로 주고 갔음에 틀림없으렷다.


지난주 미사 중 <춘천주보>에 실렸던 어느 사제의 글 속에서도 마침 시인의 시구를 읽었던 차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월요일 오후(새벽미사만 있는 월요일이 사제에게는 휴일이다.)에 '쉬고 싶다'던 그는 문득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던 중 사제는 시인의 시를 일부러 찾아 읽어도 본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수선화에게> 일부, 정호승)


사제는 '살다 보니 외로움을 잘 견디어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게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책에도 <수선화에게> 전문이 실려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주보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제가 느꼈을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춘천주보>, ‘25.3.30, p.3




산문집 읽기를 계속하는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다. 연꽃과 관련된 내용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시인은 전주 덕진공원에 있었다. 공원 속 연못에 연꽃이 있다. 연잎에 내려앉은 빗방울은 자기 몸을 잘디 잘게 쪼개어 또르르 연잎 속으로 굴러들어간다. 그러다가 연잎이 몸을 기울여 모인 빗방울들을 쪼르르 아래로 흘려보내면 빗방울들은 미련 없이 연잎을 떠나버린다. 시인은 문득 법정의 글에 밑줄을 그었던 것을 생각해 낸다. 스님은 일찍이 덕진공원 옆잎들이 빗방울을 아래로 쏟아버리는 것을 보고,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빗방울만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비워버린다'라고 했단다. 그런 연꽃에게서 시인은 깨닫는다. 연꽃은 모이면 모일수록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영혼과 육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물방울을 가볍게 비워버리더라고. 그러니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져야 한다고!


양상군자(梁上君子)들이 도량발호(跳梁跋扈)한(동명동 성당 이기범 요셉 신부 미사 강론 중 표현, '25.3.30일) 계엄과 탄핵의 계절이 지나간 요즈음 헌재소장대행인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재산 및 그에 따른 일화가 화제다. 오늘 거의 모든 미디어에 과거(2019년 4월) 청문회 때 오갔던 그와 모 의원과의 대화가 뜨겁게 올랐다. 의원은 법관 생활 27년 동안 모은 재산이 고작 4억 여원뿐이더냐고 묻는다. 이에 법관은 결혼할 때 스스로가 다짐하며 계(戒)로 삼기를 대한민국 평균(재산 기준 약 3억 원)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4억 원 조금 못 되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 반성한다. 또한 가난했던 자신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4년까지 장학금을 지원해 준 평생의 은인이자 사표로 삼은 김장하 선생(진주의 독지가)의 가르침('내게 갚을 것이 있다면 사회에 갚으라') 또한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다.



사자성어를 즐겨 사용하는 이기범 신부를 모방해 본다. 연암 박지원의 문장에서 적바림 했다는 누군가의 표현을 슬쩍 빌어도 보자. 인순고식(因循姑息, 머뭇거리며 구습대로 행동함)하며 구차미봉(苟且彌縫, 구차하게 적당히 얼버무림)하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는 더더욱 양쪽으로 가리어진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탄핵 결정 과정 상의 헌재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인간으로서의 '법관 문형배'의 청빈함은 이 어질어질한 금전만능의 시대에 반듯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겠다. 그에게서 문득 덕진공원 연못의 연꽃이 오버랩됨은 너무 오버하는 건가.




동양화가이자 영상그림 작가인 하삼두(스테파노)는 '내일이나 모레쯤이라고 말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라고 한다. 좀 쉬어갈 수 있어서, 시간을 건너짚는 여백을 만들 수 있어서란다. 매일 놀기만 하는 백수도 노는 것 멈추고 하루쯤 쉬어보자면 그리 좋을 수가 없다고도 한다.(가톨릭신문, '25.4.6)


마눌만 믿고 하릴없는 백수로 밥그릇만 축내고 지내기를 어언 9개월, 나도 노는 것 좀 멈추고 둘째 핑계 삼아, 마눌 모시고, 미국의 사막이고 협곡이고 강이고 두루두루 외유를 다녀오련다. 그리 싸돌아다니다 돌아와서는, 법관 문형배에 감히(?) 견줄 바는 아니지만, 미력이나마 공동체에 봉사하며 살아보기로 한다.


누군가가 그랬단다.

마귀에게는 절대 없는 것을 인간이 갖고 있는 것으로 봉사(아니, 희생인가?)가 있더라고.

영화 <역마차(Stagecoach)> 속의 모뉴먼트 밸리(상)와 현실 세상의 그곳. 둘째 잔치가 끝나면 둘러볼 곳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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