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선생님의 칭찬
학부모상담을 대면으로 할 때면,
매번은 아니지만 여러번 그리고 일부러
교감선생님께 연락드렸다.
'오실 수 있으세요?'
직접 학부모님을 대면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서도 있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기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여러가지 이유를 뒤로 하고
가장 큰 이유는 '저 이렇게 상담하고 있어요' 라고
보여드리고 싶어서.
아직 학교현장은
특히 초등학교는 상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상담이 전문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확실히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상담교사를 '상담을 하는 교사' 로서 상담수업도 상담도 행정도 모두 넉넉히 해내는 하나의 비교과 교사로서 대할 뿐.
그것이 곧 학교상담 즉 기관상담의 한계가 되어
외부 상담센터처럼
전문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사건, 사고가 많을 때는 제대로된 비밀보장도 지키기 어려울 때도 많다.
그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여 낙담하고 쓸쓸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나를 열심히 증명해내고 싶다.
'상담교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일개 상담교사인 내가 설명해 낼 필요는 없지만
(교육부가 필요하니까 만들었겠지.)
나 자신이 하나의 상담도구로서
이 학교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자꾸 증명해내고 싶다면 이건
과도한 직업병인 걸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학부모님들을
이렇게 만나고 있어요. 라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심리검사 결과를 참고자료로 보여드리며
'상담이 이렇게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위기사안으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과 한바탕 회의가 끝나고
회의자료를 파쇄하러 교무실에 들렀는데
교감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 상담선생님 말을 어쩜 그렇게 잘해요?
상담선생님 계시니 학교의 질이 다르네요 확실히
있어야돼, 상담교사 있어야돼 정말.'
교감선생님은 그 전엔 상담교사가 없는 학교에 계셨다고 했다.
중,고등은 상담교사가 거의 배치되었지만
초등 상담교사는 나의 임용때부터 정식으로 많이 배치 되기 시작해
아직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아직 상담교사가 없는 학교도 많은 것이다.
이 말 한마디가 그 동안의 여러 어려움들을
감싸 안아주며 포근히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학교의 질을 책임지고 있구나.'
그 동안 있었던 어려움들이 한 방에 씻겨나간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교감선생님 안계셨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저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역할은 '비교과교사'와 '소수' 혹은 '상담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이름에 묻혀
작고 미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시고 나의 질이 학교의 질이라고 얘기해주시는
상급자가 있다면, 나의 일이 잘 보여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아도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해볼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