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뭘해도 하겠다!

미국 상담인턴십

by 봄비설기

때는 2학년 2학기 말 상담이론 수업시간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 전 주에 원래부터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선배 한명이

어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상담 인턴십으로

뉴욕과 뉴저지를 다녀왔단 이야기를 들었다.

뉴욕이라는 말에 흥분한 나는

'저도 가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요?' 라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지금 듣고 있는 수업 그 교수님한테 한번 물어봐'

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만 열심히 쳐다보다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수님께 바로 물었다.

'교수님 미국 가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무슨 인턴십 프로그램을 물어본 것도 수업내용을 물어본것도 아니고

갑자기 대뜸 미국행이라니.

아주 잠깐 당황하시던 교수님은

'너 미국가고 싶어? 일단 따라와봐' 라며

연구실로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조교님을 통해 갑자기 상담사례 교정작업을 부탁하시며

'이거 잘 하고 내년에 나랑 미국가자' 라고 하셨다.



'넌 이렇게 다짜고짜 2학년 때부터 나한테 와서 미국 어떻게 가냐고 묻는 걸 보니,

뭘해도 하겠다!' 라는 말과 함께.



이후 교수님은 어딜 갈 때마다 '쟤가 미국 어떻게 가냐고 2학년 때부터 나한테 와서

물었다니까요?' 하며 나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께도 꽤나 놀랐던 일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나중에 상담교사로 발령받고 연락드렸을 때도

나에게 "그 학교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 너가 있어서" 라고 말씀해주신 은인이시다.


생각해보면,

대학원 때도 나는 이런말을 들었다.

너무 재미있는 교육학 수업을 듣고 나서

첫학기 때부터 그 교수님께 상담신청을 해서

'교수님, 교수님처럼 강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되요?' 라고 물었던 것 같다.

그 때 대학원 교수님도

'넌 첫 학기 때부터 미래에 대해 물어보는 걸 보니,

뭘 해도 되겠다!' 라고 하셨다.


뭘해도 하겠다, 되겠다 라는 말은

결국 나를 무얼 하든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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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학기가 끝나고 결국 4학년 선배들과

대학원선배까지 함께 미국행에 올랐기 때문이다.

막내였던 나는 선배들과 발 맞추어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너무 즐겁고 뿌듯했던 경험이었다.


그 당시에 교회에 속해있는 이민자 2세 아이들을 위한 상담프로그램과

교수님의 부부상담 프로그램을 돕는 역할들을 했었는데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재산으로 남아있다.


한달 간의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뉴욕 여행은 아주 짧은 3일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매일 맨해튼과 뉴저지를 오가며

뉴저지 집에 홈스테이 해 본것,

홈스테이 집의 한국 아이들과 함께 산 것,

이민자 아이들의 언어적 문제와 부모와의 소통 문제를 고민해 본 것,

이마고 부부프로그램에 대해 배워본 것 등

상담심리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인턴십 프로그램이었지만,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과 상담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서인지

당시에 '오바마 자원봉사상'도 받았다.


'넌 뭘해도 하겠다!'

그 말의 힘과 나의 겁없는 도전정신으로

상담심리에 대한 폭과 이해를 그리고 경험을 넓히며 무르익어가던

대학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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