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교육대학원

그대, 교사가 되고 싶은가

by 봄비설기


학부대표를 마치고 이제 정말 진로의 길 앞에 있을때,

해외경험을 한번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내 친구들은 교환학생을 많이 갔다.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님 딸인 나는

부모님께 교환학생을 가고 싶으니

학비를 대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선교를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들이 전혀 가지 않는 아주 먼나라,

브라질. 브라질로 1년 선교를 떠났다가

힘들어서 6개월만에 돌아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진로를 빨리 결정하고 싶었다.

친구들은 졸업하고 서울로 막 취업하면서 잘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멈춰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학교로 돌아와 마지막학기를 보내며

상담심리로 결국 할 수 있는 건

대학원을 가거나 센터같은 곳에 취업하는 것인데

상담심리는 대부분 석사 이상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다.





결국 취업하려면 사회복지로 취업해야하는데

현장실습을 경험한 뒤로 사회복지로는 취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대학원, 일반대학원?


그 때 엄마가 옆에서 끊임없이 교육대학원을 외쳐댔다.

안해도 좋으니 일단 자격증을 따란다.

교사자격증이 꽤나 쓸만하다고.


그래 그냥 넣어나 보자 했던 입시원서.

덜컥 붙어버렸고,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들으면 사치스러워 보였을 수 있으나,

서울로 올라가서 생활해야 했던 것 까지 결정해야 해서 쉽지않은 결정이었다.

부모님이 강원도에서 대학원을 가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싫었다.

붙었으니 일단 서울로 가야겠다고 했다.


이 때 나는 깨달았다.

부모님이 어디사는가 하는 것이 취업결정에도 꽤나 중요하단 걸.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님 딸인 나는 하고싶은 것도 되고싶은 것도 많았다.

그게 교사인지는 잘 몰랐다.


학업계획서에는 전문상담교사가 되겠다고 휘황찬란한 포부를 적어놓았지만, 잘 모르겠고,

그냥 일단 서울로 올라가보자 싶었다.


그대, 정말 교사가 되고 싶은가?

꿈많았던 나의 20대, 그렇게 눈물의 서울생활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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