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배고팠다.
어떻게 서울은 올라왔는데 지낼 곳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할 시점에 엄마 친구의 딸이자
나에게도 친한 언니가 승무원을 하며
서울에 오피스텔을 얻어 살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왔을 때 언니가 나에게도 승무원을 해보라며
몇일씩 그 집에서 잔 적이 있는데,
(실제로 승무원에 지원해본 적이 있다 ㅎㅎ)
언니가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니 방을 하나 선뜻 내어주었다.
그럼에도 학비는 너무 비싸고 교육대학원은 저녁에 시작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그 때 학교에서 행정조교를 뽑는다고 했고
나는 풀타임으로 학교 센터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대학원 공부를 했다.
지금까지도 대학원 학비를 갚고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젊어서 가능했던 거 같다.
일하고 육아하는 요새는 그 땐 어떻게 그 두가지를 같이 했나 싶다.
녹록치 않았다.
용돈 받고 지내던 삶과는 다른 삶이었고
지하철과 높은 물가의 서울살이는 나를 지치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쉽지 않았던 건
남의 집 셋방 살이었다.
돈을 내고는 있었지만 눈치가 보였고
잠만 잤지만 왠지 모르게 추웠다.
일년 후 바로 집을 구하지 못해
잠깐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지방에 있는 친구를 서울로 올라오라고 꼬셔서
학교 근처 원룸에서 같이 자취하다가
LH에서 해주는 전세대출을 받아
학교 근처에 투룸으로 둘이서 같이 이사했다.
먹고 살기 바쁘고 벅찼던 시간들이었다.
임용과 논문준비로 정신없을땐
늘 학교 매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웠고
교통비가 아까워 최대한 걸어다니고
한솥도시락을 애용했던 시절.
셋방살이때 밥사준 언니도 고맙고
몇 년 동안 큰 갈등없이 같이 살아준 친구도 고맙고
늘 우리동네까지 데려다 주었던 한결같은 지금 남편도 고맙고
학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서울에 잘 올라왔다고 말해주셨던 교수님도 감사하다.
사실 교사는 지방에서 하는게 훨씬 이득일 수 있다.
강원도에서 교사를 하는 엄마는 늘 강원도로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도 수도권에 살고 싶었다.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
일개 작은 공무원일지라도
수도권에서 사는 것과 지방에서 사는 것은
내가 상담으로 배우는 것부터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늘 배고프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그런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사실 원망이 훨씬 많았다.
대학원 동기의 으리으리한 서울 집에 놀러갔을 때,
집 걱정 없이 돈 걱정 없이 비싼 커피를 마시는 동기를 만날 때,
돈에 아등바등할 때는 동기들이 하는 이런 자잘한 고민들과 걱정들이
그렇게 나에게는 사치스러워 보일 수 없더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상담을 더 깊게 하면서 알게 되었다.
모두가 각자의 다른 결핍이 있고
나의 자랑이 다른 이에게 결핍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든 것을 충족하며 살 수는 없다는 걸.
나는 나로 받아들이고 나의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걸.
가난한 대학원생의 힘들었던 서울살이는
좀 더 겸손하고 성숙한 어른이 되게 해주는 디딤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과 결핍이
나를 상담하는 사람으로 있게 해주는
더 넓은 지경이 되게 해준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먹고 살기 바빴지만
한결같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셨던 부모님과
따듯한 주변 사람들의 만남으로
무엇보다 깊은 결핍의 경험으로
어른으로 잘 성장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 서럽고 집이 없어 서러웠던
서울살이는 상담심리 전공해서 밥 벌어먹고 사는
나의 관심에 박차를 가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꿈으로 시작해서 밥벌어먹는 일이 되고
꿈과 밥벌어먹는 일을 같이 해보려고 발버둥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내 꿈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