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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스무리 Apr 12. 2016

유럽, 느림의 미학이 자리한 곳

1-1. 운전 문화에서 느끼는 한국과 유럽의 '속도' 차이

유럽에서 1년여 가까이 지내다 귀국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 돌아와 보고 싶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유럽에서의 '나'는 잊은 채 한국 살이에 적응해버렸다. 어딜 가나 보이는 한글, 들리는 한국말은 이상하리만치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란 참 모순적인 동물이다. 그 익숙함이 몸서리치도록 싫증이 나 한국을 등지고 유럽으로 향한 건데, 돌아온 지 두 달도 안돼서 "한국 사람은 역시 한국에 살아야 해"라는 말 따위를 서슴지 않고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각설하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 언급해봐야 할 것 같다. 당분간 이 주제로 글을 써 볼 예정이다. 느림의 미학.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속도, 편리함'의 대척점에 서 있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구절이며, 빠른 템포로 정신없이 전개되는 현대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삶의 한 형태이다. 또한, 느림의 미학은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권 국가들과 서양의 여러 나라들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요소이기도하다. 그렇다면 느림의 미학이란 무엇이며, 어떤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느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첫 번째로 배우는 우리나라 말이 '빨리빨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 우리나라는 속도를 매우 중시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문화가 형성된 까닭에는 성격이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에 더해 짧은 기간 고속의 성장을 이뤄낸, 또 이뤄내야 했던 사회/경제/문화적 배경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느림의 미학에 관해 보다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 글이 필자의 첫 글인 관계로 제대로 짜인 글을 완성하기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하여, 이번에는 무거운 사유보다는 필자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수다 떨듯 글을 써보고 싶다.)

유럽을 떠나 인천에 도착했을 때, '와, 내가 비로소 한국에 왔구나'를 느끼게 해 준 것은 사실 기분 좋은 종류의 자극은 아니었다. 비행기가 정지하기도 전에 경쟁하듯 자릴 박차고 일어나 짐을 내리려는 사람들, 수하물 센터까지 경보 하듯 앞다투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난 속으로 외쳤다.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 우리나라 동포들이 공항에서 무의식적으로 치러 준 귀국 환영식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국과 유럽의 '속도 차이'를 절실히 느낀 공간은 자동차 도로 위에서였다. 또 당분간의 주제를 '느림의 미학'으로 정하게 된 계기도 도로 위의 경험 (이 때 도로에는 車道는 물론 人道도 포함 된다) 때문이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운전한 기간보다 유럽에서 운전한 기간이 훨씬 길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운전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처음 독일에 도착하여 회사의 반강제적 제안에 의해 운전을 할 때만 해도 두려운 마음이 훨씬 컸다. 한국에서도 운전한 경험이 별로 없는데, 교통 체계가 전혀 다른 독일에서 운전을 해야 하다니! 불가능한 도전이라 절망하며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독일에서 운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인구 밀집도부터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넓은 땅에 착하게도(?) 골고루 분산되어 있는 독일 국민들은 초보 운전자에게 최적의 도로 환경을 제공했다. 도로 위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의 대수 자체가 적으니 운전의 긴장감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운전을 그 무엇보다 수월하게 만든 것은 운전자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이었다. 유럽에서는 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켜면 뒤따라오던 차가 속도를 줄여준다. 그래서 걱정 없이 차선을 변경할 수 있다. 또 정해진 규칙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한국보다 현저히 적다. 예를 들어,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자동차 도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가 로터리 (roundabout)인데 여기서 통행의 우선권이 주어지는 차들은 이미 로터리에 진입한 차량들이다. 자신의 차량이 이미 로터리를 돌고 있다면, 다른 곳에서 자동차가 느닷없이 들어닥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사소한 차이지만 각각의 운전자가 보이는 양보심과 호의를 통해 안전한 운전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로터리의 모습. 원 안에서 돌고 있는 차량이 우선권을 가지기 때문에, 주변 도로에서 로터리에 진입하고자 하는 차량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차선을 바꾸기가 정말 무섭다. 깜빡이를 켜자마자 속도를 높이는 차 때문에 정말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빙빙 돌아서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또 로터리에서도 무작정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유럽에서 편한 마음으로 운전하다가 한국의 각박한 도로 위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운전을 하니 정말 실소가 새어나온다. 여기서는 참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깜빡이를 켠 차량을 보면 마치 파블로프의 실험견이 된 것마냥 엑셀을 밟는다. 제한 속도를 준수하며 운전하다 보면 뒷 차들이 현란한 운전 솜씨로 필자의 차를 스쳐 지나간다. 아직까지 필자는 유럽에서 배운 운전 문화를 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이러한 행동들을 하지는 않지만, 이 마음가짐이, 다짐이 언젠가는 버려질 것에 매우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관계로, 나머지 내용은 새로운 페이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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