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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쌀 Dec 10. 2019

스타트업 하려면 위워크에서 시작해야지?

꿈과 현실과 또 현실의 차이

인생에 그런 사람 하나둘 있지 않나? 지금 눈앞에 놓인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속에서 활화산이 타오를 때 딱 떠오르는 사람. 술 마시며 "잊어 잊어" 원샷 외치는 친구 말고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


나에게도 몇몇 있다(나 인생 헛 살지 않았다).

면접을 본 세 군데 회사 중 어디로 이직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나, 결혼 앞둔 남친이(지금의 남편) 마통으로 주식을 어마하게 굴리고 있다는 걸 알게된 순간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것을 사업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을 때 떠오르는 인물. 이 브런치 기록 속에서는 '훈'이라고 칭하겠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일 테니 잘 기억해주길.


'훈'은 나의 첫 사회생활 선배였다. 그 역시 에디터였고, 2년 정도 함께 일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속한 팀 리더는 성질이 아주 지랄맞은 고량주 같았는데, '훈'은 도수 낮은(아니, 없는) 맹물 같은 사람이었다. 팀 리더가 내 교정지를 바닥으로 집어던질 때도, 대표한테 불려가 멘탈 1그램도 남기지 않고 털려 올 때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만 볼 뿐, 그 흔한 '파이팅!'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두 달이 지났을까, '훈' 선배가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였다. 곧 그만 둘 사람처럼 내가 위태로워보였을까? 선배는 내게 금가루가 들어간 비싼 사케를 사주었는데, 그제야 "힘내요."라고 하였다(선배는 맹물 아니고 사케였다. 응?).  


와, 나 짐 싸서 고향 내려가려고 했는데.


나는 힘을 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더 흐르자 고량주 리더는 대표랑 대판 싸우고 회사를 나갔고, 팀은 사케화되었다. '훈'이 새로운 리더가 되면서 나는 선배들의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자라게 되었다(물론 진짜 사랑은 회사 내 디자이너에게 주고 있었다. 그녀가 현재 '훈'의 와이프가 되었다지).


봄쌀 시즌2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9년의 여름, 이 여름을 흠뻑 즐기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워킹맘이었다. 엄마로서 하고 싶은 일, 엄마라서 해볼 만한 일, 엄마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그러자 선배 얼굴 또한 따라 떠올랐다.


선배, 나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걸]에 대해 구구절절 쓰고, 유사한 모델을 찾고, 어떤 형태면 좋을지 첨부파일을 넣어 메일을 보냈다. 선배는 다시 맹물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위워크(wework)로 한번 와요.


위워크가 어떤 곳인지는 알았지만 가본 적은 없던 1인으로서 거길 가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들떴다.

'뭔가 설레는 일이 시작될지 모르겠군.'

'역시 이런 곳에서 인맥 쌓고 시작하고 그러는 거지.'

걸음이 가볍다 못해 공중에 흩어질 지경이었다.


상상했던 대로 위워크는 신선했다. 출입허가를 받는 것부터(출국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래 빡세;) 둥근 visit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것까지. 오라고 한 층까지 올라가 두리번거리자 그 공간과 가장 안 어울리는 듯 보이는 '훈'이 저기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왔다.


13년 동안 줄곧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던 나와는 다르게, 선배는 그동안 사업체도 굴려보고 영화도 제작하는 등 다른 행보를 걸었다. 그리고 때마침 위워크에 있으면서 다음 행보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그렇게 나의 생각과 '훈'의 생각이 합쳐지기 시작했고, 우리의 고민이 스타트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위워크는 그럼?

10월 말 나는 퇴사를 하기로 했고, 그동안 선배는 멤버를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11월 1일, 위워크에서 나와서 공덕의 한 오피스텔을 계약하여 들어왔다. 멤버들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사무실 위치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양재에서 공덕까지 지옥의 반포대교를 뚫으며 출퇴근이 아주 힘겨워졌는데, '훈'은 집에서 걸어서 다니는 거리라고 한다.
최소한의 집기들만 들여 사무실을 세팅하였다. 책상을 어찌나 싸구려를 샀는지 상판이 책상다리와 붙어 있지 않다. 그냥 번쩍 들리기 때문에 옮길 때 주의가 필요하다. 사무실 곳곳에 짠내가 풀풀. 근데 이 공간이 위워크보다 더 좋다. 우리의 스타트업이 계획대로 성공하면 이 공덕의 오피스텔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공덕의 짠내 풀풀 오피스텔, 전망은 참 좋다



정예멤버는 나를 포함 다섯이다.

곧 '고'와 '심'과 '승'에 대해서도 써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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