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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쌀 Oct 12. 2020

공기 모아 태산

티끌이 아니다

넌 어쩜 '이렇게' 돈 안 되는 짓을 '그렇게' 오랫동안 하니?



내가 듣는 단골멘트다. 대체로 그랬다. 돈 안 되는 짓을 잘한다. 심지어 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래한다. 또 그냥 오래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듯이 열심히 오래한다. 



내가 그렇다

 


이번 브런치에서는 나의 돈 안 되는 짓들의 역사, 그 광활한 시간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블로그를 아주 오랫동안 했다. '파워' 단어가 내게 붙지 못했을 뿐, 싸이블로그를 거쳐 네이버블로그까지(사실 현재도 블로그에 일기를 쓴다) 블로거로서의 존재감(?)을 가열차게 드러내는 중이다. 

내 블로그 큰 주제는 '출판사 에디터'였다. 출판계 입문한 지 3년 차에 접어들 무렵이었을까. 너무 작은 출판사(나의 두 번째 출판사)에 이직한 것이 문제였다. 내게는 그 흔한 지랄맞은 사수조차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내게 "왜 출판사를 차리지 않아요?"라고 왕왕 묻곤 했는데, 이때 1인 출판사처럼 일했던 경험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획, 계약, 디자인 의뢰부터 종이 발주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하나씩 부딪치며 해결하였는데, 언제나 더러운 서해 바닷가를 질퍽질퍽 홀로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출판사에 일하면서 알게 된 정보나
같이 공유하면 좋을 에디터 이야기를!


그랬더니 좁고 폐쇄적인 이 출판계에 혜성과 같은 동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플랫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일하는 에디터들과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에디터들이 댓글을 통해 소통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나가기도 하고.


어느 날, 낯선 사람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다양한 직업군의 젊은이들을 모아서 '지역발전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니 합류하겠냐 의사를 물었다. 

이 활동 또한(돈 안 되는 짓이었건만) 2~3년 정도 한 것 같다. 덕분에 인터넷 기사에 소개되기도 하였고, 활동의 결과물이 책으로 담기기도 했다.   

 

유통되는 책은 아님


그러던 중, 이대 글로벌평생교육원에서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는 방법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건 위(지역발전위원회) 활동으로 만난 젊은 교수님께서 제안해주었다. '북에디터 강의' 만들어보는 거 어떠냐고.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 기획안을 제출하여 기다리길 수일!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북에디터 전문교육과정' 강의가 평생교육원에 개설되었다. 하지만 이런 강의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개설'이 아니다. 적정인원의 모객이 되지 않으면 폐강되는 것이 강의 시장의 기본 원리이다.

 

아주 평범한 출판사 에디터인 내가 하는 강의를 어찌 알릴 것이며, 수강생을 어찌 모을 것이냐 고민의 날들이 거듭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써온 내 블로그에 공지를 올리기로 했다. 고민의 날들이 무색해질만큼 금방 모객이 되었다. 

블로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숨어 있는 찐팬 후배 에디터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각자의 모습을 드러냈다. 


평생교육원은(다른 분들은 얼마의 강사료를 받는지 몰라도) 시간강사 개념이라 시간당 페이는 참 적었다. 수업 마지막날 수강생들에게 간식을 쏘거나 뒤풀이 비용에 보태면 그곳까지 왕래하는 기름값 정도가 겨우 나올 정도였지만, 나는 이 강의 역시 장장 3년을 했다. 


내가 출판계 떠날 때 현수막도 걸어준 찐사랑들


이 수업을 통해 만난 모든 수강생들이 나의 출판계 인맥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북에디터 강의를 할 때 대체로 병아리 에디터들이 찾아왔다. 이유는 '사수가 없어서' 혹은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그런데 어느 학기부터인가... 책을 쓰고 싶어서 수업을 들으러 왔노라 하는 분들이 있었다.


왜, 책을 쓰고 싶다면서 
에디터 수업을 듣는 거지? 


의아하던 그때, 머릿속에서 번쩍 전구가 켜졌다.

 

맞다!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배우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감독을 찾아가는 게 맞지!


이 생각이 들자, 순식간에 목차가 떠올랐다. 숱한 투고메일을 보면서 고구마 백 개 먹은 에디터의 심정을 모조리 책에다 풀어내보자 결심하게 되었다. 

2018년 여름, 책이 출간되었다.

절찬리 판매중


자부하건대, 현존하는 책쓰기 책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었다거나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연락오는 독자들이 많아 뿌듯하다.     

이 책 덕분에 백화점 아카데미에서 책쓰기 강의도 하고, 유명 도서관에도 강의 제안을 받고, 국방TV에도 나가고, 강의쇼에도 초대되고, 유튜브 신사임당 채널에도 나가게 되었다. 어떤 강의는 시간당 페이를 100만 원으로 제안받기도 했다.


미용실 다녀온 머리예요




에디터로 일할 때 저자로 만난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 나와 정반대의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동갑이기도 하고 얘기 나누면 너무 술술 잘 통해서, 서로 존대하지만 웬만한 친구보다 비밀 이야기 더 많이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류지원 선생님과 함께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한 건 2015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임신출산육아에 관련된 팟캐스트 방송이 하나도 없었을 때였고, 콘텐츠로 노는 데 너무나도 관심이 많았던 나는 쌤에게 이렇게 제안하였다. 


쌤, 같이 팟캐스트 해볼래요?


팟캐스트 맘맘맘


명랑한 우리 류쌤은 그자리에서 '오케이'하였고, 그리하여 2020년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는 돈 안 되는 짓, 팟캐스트 '맘맘맘'의 서막이 열렸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PODCAST나 팟빵 등의 플랫폼, 네이버에서 시작한 오디오클립도 초기 단계부터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유튜브 역시 뛰어들지만 않았을 뿐, MCN 회사를 통해 이 플랫폼의 변화를 꾸준히 엿볼 수 있었다. 이런 활동은 '밀리의 서재'나 '윌라' 등의 콘텐츠 회사와 인연을 맺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맘맘맘' 팟캐스트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수많은 게스트들을 만날 기회였다. 아무리 출판사 에디터라도 내 저자가 아닌 이상 유명 저자(혹은 유명인)를 만나기는 어렵다. 그런데 나는 '맘맘맘'을 핑계로 그동안 궁금했던 임신출산육아 관련 전문가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훗날 에디터와 저자로 인연을 이어가 내가 그들의 책을 만들기도 하였으니, 나에게는 참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팟캐스트 인기는 점점 많아졌고, 끈끈한 팬들도 생겼다. 이 일이 내게 부를 안겨주진 않았지만, 팟캐스트를 통해 내 저자의 책을 소개할 수 있었고(다른 사람들에 비해 홍보 채널이 하나 더 있는 셈), 내 저자를 자유롭게 초대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매출과도 연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유리한 상황을 버리고, 나는 출판계를 떠났다. 

왜 창업하게 되었는지는 도플갱어 인터뷰로 확인하길

인터뷰 영상




현재 나는, 'THE배우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가 되었다.


THE배우다는 5-10세 아이들의 교육기관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이 연령대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THE배우다'를 창업할 때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해준 분이 있는데(투자 이야기는 여기서 확인), 훗날 나는 '훈'을 통해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투자자 분의 아내가 '맘맘맘'의 BIG 팬이라고. 그래서 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도 팔로우업 하여 보고 있었단다. 그러면서 '봄쌀'님이 대표를 맡는 것도 찬성이라 하였다고... (이 글도 보실지 모르겠지만, 감사해요!)




돈 안 되는 과거 모든 일들의 종착점이 'THE배우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팟캐스트를 통해 임신출산육아 정보를 듣던 '맘맘맘' 팬들의 아이들이 이젠 'THE배우다' 플랫폼 타깃이 될 정도로 자랐고 

-출판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던 인맥들은 우리 플랫폼의 클래스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저자를 발굴하던 기획력으로 찐 콘텐츠를 판별할 있게 되었고

-800페이지짜리 책도 뚝딱 만들던 실력으로 우리 회사 기획 노트를 손쉽게 만들고 있으며

-서점에 보낼 굿즈 만들던 노하우 역시 우리 회사의 굿즈 만드는 노하우로 전환되었고

-평생교육원 강의 때 출판부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온 유명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 현재 우리 플랫폼 파트너 학원이 되었고 

-출판계 인맥들 모아서 오프라인 대환장 파티를 열었을 때 만난 분은 우리 플랫폼이 자리잡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그림책심리연구소 리틀마누 원장님이다.

-지역발전위원회를 통해 알게된 방송작가님 소개로 우리 회사 콘텐츠 에디터를 채용했고

-다시 블로그를 통해 'THE배우다'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알리고 있다.   


그냥 계속 열심히 할 거야


티끌 모아 언제 태산이 되나 싶지만, 살다 보니 '티끌'도 아닌 것 같다. 티끌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살면서 쌓아온 모든 경험과 노력은 공기처럼 쌓이는 게 아닐까 싶다. 


+
좋은 운 만들기

나의 저자님 민영쌤이 출판사를 그만둘 거라고 어렵게 말을 꺼내는 나를 응원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의 운은 좋다가 안 좋다가 산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변해요. 그런데, 살면서 운이 진짜 안 좋을 때, 이 기운을 그나마 좋게 바꾸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요?"
"글쎄요."
"늘 공부하고, 베푸는 거요. 평소 이것을 잘한 사람들은 운이 그렇게 나빠지지 않아요. 잘 극복하게 되는 거죠."    


좋은 공기를 쌓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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