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엄마는 언제나 애틋하다.
혹여나 아픈 곳은 없을까 신경쓰이고
혼자 먹는 저녁, 밥알이 까끌하진 않을까 걱정되고
하루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풀어내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 마음이 아리다.
대학생 시절 집을 떠나 살며 주말마다 본가에 가던 시기가 잠시 있었다. 공휴일이었던 월요일 저녁, 집에 가기 위해 본가를 나와 버스를 탔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냐는 물음에 "버스 탔는데. 왜?" 하자 엄마는 "벌써 갔나? 집에 있으면 같이 저녁 먹자고 할라 했지. 갔으면 됐다. 조심히 가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주면 다시 볼 엄마인데도, 그 저녁이 이상하게 오랫동안 마음 한 켠에 무겁게 남았다.
이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아주 많이 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가득 남고 미안함이 솟아오르는 그런 일들이.
어느 날은 알바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작은 케이크를 하나 샀다. 별 의미는 없었고, 그냥 지나치다 창 너머로 보이는 케이크가 맛있어보여서 엄마와 같이 먹고싶었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집에 가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의 반응은 "쌔빠지게(힘들게) 알바한 돈으로 이런거 사오지 마라" 하는 말이 전부였다. 케이크도 겨우 한 조각만 먹었다. 맥이 빠졌다. 입이 잔뜩 나온 내게 엄마는 "난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한다." 했다.
언젠가 건넨 어버이날 비누꽃에는 "이런거 뭐하러 사노" 했고, 중년에 접어들어 몸에 자꾸 열이 오르고 밤에 잠이 잘 안 온다는 엄마를 위해 달달한 슈가파우더가 잔뜩 뿌려진 빵을 사간 날에는 한 입을 먹곤 달아서 안 먹는다며 도로 내게 내밀었다. 엄마의 이런 반응에 매번 실망했다.
기뻐할 줄 알았는데. 고맙다고, 딸 잘 키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다시 해가 지나 찾아온 엄마의 생일.
어떤 선물을 할까 한참 고민하는데 떠오르는게 없었다.
엄마의 취향을 내가 알던가?
엄마가 좋아할만한 선물은 어떤게 있을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뭘 좋아하지?
문득 그동안 엄마에게 가져갔던 선물들이 떠올랐다.
생크림케이크, 슈가파우더가 잔뜩 뿌려진 빵, 비누꽃송이 등등. 그건 엄마가 좋아하던 거였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덤덤하게 반응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입이 불퉁 나왔던 내 모습도 뒤따라 떠올랐다. 선물은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일진대, 내가 엄마에게 주었던 선물들은 누구의 기쁨을 위한 것이었을까.
엄마를 위한 선물에서조차 나는 이렇게나 이기적이다.
나의 뿌듯함과 나의 만족을 위해 '효도'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효도랍시고.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하며 집에 가던 중 우편함에 꽂힌 친구의 편지를 발견했다. 친구에게 편지가 왔노라고 이야기하니 엄마는 "부럽다. 편지 써 주는 친구도 있고." 했다. 집에 들어가 나는 편지지를 펴놓고 악필로 한 글자, 두 글자 써 내렸다. 사실 할 말도 별로 없다. 친구에게 쓰는 편지엔 할 말이 많은데 엄마에게 쓰는 편지는 왜 그리 휑한지. 그럼에도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웠다.
편지지를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 안에 넣었다. 며칠 후 주말이 오면 본가에 가 엄마를 만날테지만, 우편함에 쏙 꽂힌 누군가로부터 온 편지를 마주하는 설렘을 엄마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 주가 지나 본가에 갔을 때 엄마는 내게 "편지 왜 보냈는데? 너무 감동적이어서 뜯어보지도 못했다." 하며 웃었다. 그 웃음은 뿌듯하기보다 시렸다. 이 작은 것 하나 자주 해주지 못해 이제서야 알았단 말인가. 엄마를 떠나기 고작 3개월 전에.
엄마가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줄 때, 무엇을 할 때 엄마가 가장 기쁠지. 여전히 나는 효도가 뭔지 모르겠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 부모와 친밀한 것?
그래도 그 날의 편지 하나는 내게 한 조각의 가르침으로 남았다. 아주 오래 기억되겠지. 그 기억이 어쩌면 이 글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그냥 문득 툭, 건네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