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찬장에는 늘 필름 통들이 가득했고, 쌓였던 필름의 수만큼 나의 시간은 담겨 흘렀다.
셔터에 나의 날들이 스치고, 컷컷이 나는 자랐으며,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가고, 찍은 사진을 카메라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한 후로도 낡은 필름카메라는 내 성장을 오랫동안 담아주었다.
중학생이 되던 무렵
용돈을 털어 당시 20만원에 육박하던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쥠과 함께 필름카메라는 장롱에 쳐박혔다.
사진에 담기던 나는 셔터를 누르는 이가 되어 있었고 낡은 카메라가 잊혀짐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나의 어린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바닥만한 디지털카메라는 밀려나고 두 손으로 들어도 묵직한 DSLR의 시대에 접어든 무렵, 갓 스무살의 나는 알바비를 털어 DSLR을 샀다. 목에 걸고 온종일 쏘다니면 근육통이 오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롱에서 오랫동안 박혀있던 먼지 묻은 필름카메라가 발견되었다. 전원을 켬과 함께 지이잉- 필름이 감기는 소리를 내었고 고정되어버린 시간 속 기억이 되감겨 눈 앞에 어릴 적의 그 장면들이 퐁퐁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 유치원에서 돌아와 땀을 뻘뻘 흘리며 드러누웠던 색 바랬던 곰돌이 배게. 늘 지지직대는 소리를 내며 켜지던 뚱뚱하고 네모난 작은 텔레비전. 1분에 한 번씩 신호가 끊겼던 무식하게 크고 투박한 라디오. 옥빛 칠이 다 벗겨진 찬장의 은색 손잡이를 열면, 항상 그 곳에 쌓여있던, 어느 회사에서 만든지도 모를 필름과, 이유없이 서럽게 울어대는 나를 향해 웃어대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뜨렸던 엄마.
없는 살림에 카메라를 구입하던 엄마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사진이라는 부질없는 것에라도 빗대어 오래도록 기억해보고자 했고, 사진을 썩 잘 찍지도 않으면서 카메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그런 엄마를 닮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들을 바지런히도 주워담아보자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손에서 엄마의 시선을 담던 카메라에 새 필름을 끼우고 셔터를 눌렀다. 나의 나이만큼 낡은 카메라는 여전히 제 일을 했고 그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엄마는 여전히 흘러가는 내 시간이 아깝다. 그렇지 않은 척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