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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이 Jan 27. 2024

더블린을 떠나기로 했다(2)

Bidding 전쟁

보통 매물로 올라온 집의 가격을 여기서는 'Guide price'라고 부른다. 안내 가격. 말 그대로 최종 가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집의 찐(?) 판매가는 Bidding이라는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한마디로 경매다. 뷰잉을 와서 집을 둘러보고 구매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을 던진 사람이 집을 얻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온 집의 Guide price는 310,000 유로. 우리가 생각했던 상한선에서 아주 조금 낮은 가격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와 남편은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보통 이메일을 보낼 때는 우리가 구매를 원하는 가겨을 함께 표기해 보내게 되는데, 운이 좋은 경우 Guide price보다 낮은 가격을 제안해도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하지만 돌아오기 전 부동산 에이전트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 원래 처음에는 285,000 유로로 올라왔던 집인데 310,000유로까지 올랐어요. 혹시 더 나은 가격으로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뷰잉을 한번 더 하는 거예요.


이 말을 듣고 '이런 욕심쟁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이 없는 자가 죄인이 아니겠는가.

나와 남편은 아주 소심하게 가격을 조금 올려 310,500유로를 제안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이메일이 왔다.


- 현재 가장 높은 Bidding price는 315,000이에요. 더 높은 금액으로 bidding 할래요?


망설였다.

315,000유로라면 우리가 잡아놓은 최고 상한가였다.

여기서 돈을 더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마음을 접어버리기에는 집이 너무 예뻤다. 유럽의 여름은 낮이 길다. 밤 9시가 되어도 밝은 하늘 아래 썬룸에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건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었다.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만 더 해보자고.

남편은 망설였다. 모기지를 갚고 그 외에 따라오는 인터넷, 전기세, 가스비, 보험금 등을 내려면 빠듯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를 꺼내 차분히 계산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월급과 지출, 315,000유로보다 조금 더 썼을 경우 예상되는 월 대출금과 그 외 세금들. 계산을 마치고 나니 1,000유로 정도는 더 써도 될 것 같았다.


"진짜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으로 딱 1,000유로만 더 올려보자."


남편은 내 설득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316,000유로로 에이전트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어쩌면 이 집이 우리 집이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Newbridge 지역에 있는 Whitewater shopping center. 사진 출처-businessandfinance.com


뷰잉을 마치고 오는 길에 들렀던 쇼핑센터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County Kildare 내에서 제법 큰 쇼핑센터라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들르기도 한다는 Whitewater shopping center. 도시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그곳은 마치 이미 내 도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후 에이전트에게서 온 이메일이 나의 기대를 깨뜨렸다.


- 현재 최고가는 319,000 유로예요. 더 bidding할래요?


아.

이제는 물러나야 했다. 이건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빠지겠다는 답메일을 보내면서 나는 부동산 시장에서 패배자가 된 것 처럼 낙담했다. 남편은 "욕실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마음에 걸려했잖아. 더 나은 집이 나올지도 모르지." 하면서 나를 위로했지만 별로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마음에 드는 집을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매물 사이트를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조금씩 지쳐가던 때에 부동산 에이전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 그때 당신이랑 다른 bidder 두명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bidder 들이었어요. 상대방이 마지막에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지만, 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은 모양이에요. bidding을 철회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마지막에 제시한 금액 316,000유로에 낙찰해줄게요.


헐.

순간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그 집을 살 수 있다니!

하지만 316,000유로는 우리에게도 좀 무리한 금액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가장 높은 bidder중 하나였다면 가격을 조금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전화로 협상을 시도했다.


"사실 우리가 정한 상한선은 310,000유로였는데 집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가 좀 무리했어요. 312,000유로 정도로 가격을 내려준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에이전트는 집 주인과 이야기 해본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편 역시 312,000유로로 낙찰이 된다면 좋겠다고 동의했다.


그날 저녁, 에이전트는 집주인이 동의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조만간 다음 절차에 대해 협의하자는 말을 들은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이제 우리도 우리 집을 갖게 되는구나. 남편과 함께 방방 뛰었다.


하지만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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