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언어와 경계 언어

― 포근함과 선 사이에서

by 봄울

나는 가끔

아무 일도 없을 때,
혹은 아주 힘들 때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들리라고 하는 말도 아니고,
지금 당장 감사할 이유가 명확해서도 아니다.
그 말은 오히려
세상에 먼저 보내는 선언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좋은 방향을 믿겠다.


그 말이 공기처럼 퍼져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삶은 늘
선언만으로는 지나가지 않는다.


"나 좀 데리러 와." 라는 전화에

아이 둘을 태우고
밤길을 운전하여
술을 마신 남편을 데리러 갔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먹고 싶지?”라고 말했고,

나는 말없이
근처의 작은 슈퍼 앞에 차를 세웠다.


"어? 지갑이 없네."


그러면서 첫째아이와 내려서

아이스크림을 사라고 한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소주도 하나 사와.”


"뭐야? 진짜 목적이 그거였어? 나쁜남자"


조금 웃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역시 혼자 '나쁜 여자'라고 중얼거렸다.



"나쁜 남자"


‘감사합니다’를 자주 말하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내가 믿는 언어와
내가 내뱉은 언어 사이에
조금의 간극이 생긴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요즘
조금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다.

전환 중인 언어.


감사 언어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조금 더 참아보려는 말,

조금 더 믿어보려는 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


반면,
경계 언어는
나와 아이들을 향해 닫힌다.

여기까지는 괜찮고
여기부터는 아니다,
이건 불편하고
이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조용히 선을 긋는 말.


문제는
우리가 이 두 언어를
서로 적대적인 것으로
오해해왔다는 데 있다.


감사 언어만 쓰다 보면
나는 점점 작아지고,

경계 언어만 쓰다 보면
세상은 점점 거칠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연습하고 있다.


감사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경계는
나를 지키기 위해 쓴다.


“나쁜 남자”라는 말은

감정으로는 틀리지 않았지만,
방향으로는 조금 거칠었다.


만약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이건 나랑 아이들한테 부담돼.

그냥 집에 가면 좋겠어.”


이 말들은
상대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기준을 조용히 놓아둘 뿐이다.


감사 언어와 경계 언어는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있을 때,
나는 나로 남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말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필요한 순간에는
선을 긋는 연습을 한다.


그 두 언어가
같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조금 믿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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