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참아봐.”
“사랑으로 이해해야지.”
“그래도 용서해야 하지 않겠어?”
말들은 모두 옳아 보인다.
성경에도 있는 말들이고,
나 역시 믿고 싶은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이 질문이 조용히 떠오른다.
이 부당함을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 걸까.
여선교회 모임에서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간호사로 일하는 분이었다.
직장에 직급이 낮은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늘 야간 근무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려서 야간근무는 못해요."
그 말 뒤로,
야간 근무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몫이 되었다.
처음엔 참았다.
믿는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게 사랑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쳐갔고,
마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쌓였다.
이건 내가 더 성숙해져야 할 문제일까.
아니면,
누군가 대신 지고 있는 짐일까.
우리는 종종
사랑과 착취를 구분하지 못한 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설득한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계속해서 불공정한 구조 안에
머물러도 된다는 뜻이었을까.
예수님은 사랑하셨지만
항상 물러서지만은 않으셨다.
사명이 왜곡될 때는 자리를 떠나셨고,
불순한 요구 앞에서는 침묵하셨으며,
옳지 않은 일 앞에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어쩌면 우리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참음과 경계를
서로 반대말처럼 배워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참음은
항상 머무는 선택을 의미하지 않고,
경계는
사랑이 없다는 증거도 아니다.
나는 요즘
이 질문을 자주 품는다.
이 참음은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소진시키고 있는가.
어쩌면 믿음이란
무조건 더 참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는 선을 그어야 하는지를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은
한 번의 글로 끝낼 수 없어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해보려 한다.